미국 인플레이션이 중동 전쟁 장기화로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관세발 물가 압력이 진정 국면에 접어들던 시점에 '전쟁발 인플레이션'이 본격화하면서 연방준비제도(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이 급격히 후퇴하고 있다.
●근원물가까지 예상치 상회
미국 노동부는 12일(현지시간) 4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3.8% 상승했다고 발표했다. 시장 컨센서스(3.7%)를 웃돌며 2023년 5월 이후 약 3년 만의 최고치다. 전월 대비로도 0.6% 올라 3월(3.3%)보다 상승 폭이 크게 확대됐다.
문제는 식품과 에너지를 제외한 근원 CPI마저 예상을 뛰어넘었다는 점이다. 근원 CPI는 전년 동월 대비 2.8%, 전월 대비 0.4% 상승하며 모두 시장 예상치를 상회했다. 전월(2.6%)보다 상승 폭을 확대해 물가 압력이 광범위하게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줬다.
●호르무즈 봉쇄에 에너지 급등
직접적 원인은 에너지 가격 폭등이다. 미국과 이란 간 종전 협상이 교착되고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국제유가가 치솟았다. 에너지 부문은 전월 대비 3.8%, 전년 동월 대비 17.9% 급등했다. 휘발유는 한 달 새 5.4%, 전년 대비 28.4% 폭등했고, 연료유는 전년 대비 54% 이상 치솟았다. 에너지 기여도만 1.1%포인트로 3월(0.8%포인트)보다 증가했다. 주거비 상승세도 부담이다. 주거비는 전월 대비 0.6% 올라 전월(0.3%)보다 두 배 확대됐다. 에너지를 제외한 서비스 물가도 전월 대비 0.5%, 전년 동월 대비 3.3% 상승하며 하향 추세가 꺾였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관세발 인플레이션 압력이 약화되던 국면에서 미국 물가가 본격적인 전쟁발 에너지물가 압력에 직면했다"며 "호르무즈 해협 봉쇄 해제 없이는 물가 상승세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가 급등으로 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가 후퇴하고 있다. 2026년 내 금리 인하 횟수가 줄거나 시점이 늦춰질 가능성이 반영되며 '고금리 장기화' 기조가 다시 강화되는 분위기다. 문다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5월 중동 이슈가 완화되지 않으면 헤드라인 CPI가 일시적으로 4%를 상회할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전문가들은 수요 측면의 인플레이션 재가속 가능성은 제한적이라고 평가한다. 구인율 하락과 임금 상승률 둔화가 이어지고 있어 중동 전쟁 불확실성이 완화되면 인플레이션 경계감도 점차 완화될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박 연구원은 "미국 물가 압력 정점 통과는 물론 케빈 워시 신임 연준 의장 체제에서 금리 인하 기대감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미국-이란 간 종전 협상 타결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