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최근 국내 반도체 기업들이 역대급 실적을 발표하며 축제 분위기입니다. 그런데 물밑에서 일본 반도체의 반격이 예사롭지 않다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증권부 전효성 기자와 살펴보겠습니다. 전 기자, 일본의 대표 메모리 기업인 키오시아 주가가 올해만 3배, 1년간 1800% 뛰었다는데, 이 현상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기자>
현재 일본 키오시아에 열광하는 이유는 단순히 실적이 좋아서가 아닙니다. 일본이 미국과 손잡고 반도체의 판 자체를 바꾸려는 구조적 반격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일본 반도체가 그동안 한국을 뒤쫓는 형태였다면, 이제는 새로운 생태계를 설계해서 한국의 주도권을 뺏어오겠다는 전략이죠. 그 핵심 병기가 바로 ZAM(Z-Angle Memory)입니다.
<앵커>
ZAM이라는 기술이 생소합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90%이상 점유하고 있는 HBM의 차세대 대항마라고 하던데,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인가요?
<기자>
쉽게 비유하자면 기존의 HBM은 아파트를 층층이 똑바로 쌓아 올리는 방식입니다. 공간은 덜 차지하지만 건물 한가운데 열이 갇혀버리는 발열 문제가 치명적인 단점이었죠. 열이 쌓이다보니 반도체가 제 성능을 내지 못하고 결국 위로 쌓는데 한계가 생기는 겁니다.
반면에 ZAM은 아파트를 쌓을 때 'Z'자 형태로 연결해서 쌓는 방식입니다. HBM이 건물을 수직으로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형태로 연결된 것이라면, ZAM은 사선형 에스컬레이터로 연결하는 형태죠.
이렇게 연결 축을 비틀면 층 사이사이에 자연스럽게 미세한 틈이 생깁니다. 이 틈이 바람길 역할을 하면서 전체 발열을 50%가까이 줄여줍니다. 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도체 쌓는 도면 자체를 새로 그리는 셈입니다.
<앵커>
발열을 잡기 위해 구조를 바꿨다는 건데, 단순히 기업 차원의 시도가 아니라 일본 정부가 국가적으로 밀어주고 있다고요?
<기자>
24일 일본 외신에 따르면 일본 국책기관인 신에너지·산업기술종합개발기구(NEDO)가 ZAM을 정부의 공식 보조금 지원 사업으로 최종 채택했습니다.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는 인텔이 기술력을 제공하고 맡고, 소프트뱅크의 자회사인 사이메모리가 칩 설계를 합니다. 여기에 키오시아가 메모리 제조를 맡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일 반도체 동맹'의 실체가 드러난 셈입니다.
보조금 지원이 확정되자 이들은 도발적인 발표를 내놨습니다. 'HBM을 넘어 ZAM을 차세대 글로벌 표준으로 만들겠다'고 선언한 겁니다. 사실상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장악하고 있는 HBM 시장의 판도를 밑바닥부터 뒤흔들겠다는 일종의 선전포고인 셈입니다.
<앵커>
일본 정부까지 가세했다니 국내 기업들 입장에선 긴장의 수위를 높여야 할 것 같습니다. 여기에 키오시아가 낸드플래시 쪽에서도 미국 기업과 협력을 강화하고 있다면서요?
<기자>
얼마 전 키오시아는 미국의 샌디스크와 맺고 있던 합작 투자를 2034년까지 5년더 연장하기로 했습니다. 샌디스크는 현재 AI 데이터센터용 기업형 SSD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이고 있는 강자죠. 지난해 나스닥에서 가장 많이 주가가 오른 기업이기도 하고요. 키오시아는 확실한 우군을 10년 가까이 더 확보한 겁니다.
여기에 실리콘밸리에서는 미국과 일본의 소재·부품·장비 기업 12곳이 뭉친 'US-JOINT' 컨소시엄이 출범했습니다. 미국에서는 3M, KLA 같은 기업이 참여하기로 했고요, 일본에서도 TOPPAN(기판), TOK(포토레지스트) 같은 거물급 기업이 동참하기로 했습니다.
여기서 유리기판 같은 차세대 패키징 기술을 공동 개발하기로 했는데, 지금까지의 스토리를 종합해보면 메모리부터 첨단 반도체, 후공정까지 미일 동맹이 끈끈해지는 상황입니다.
<앵커>
일본 반도체의 리레이팅이 우리에겐 위기일 수 있겠지만, 투자자 입장에서는 그 틈새에서 기회를 찾고 싶을 텐데요. 우리가 주목할 만한 국내 기업들은 어디가 있을까요?
<기자>
일본의 반격이 거세질수록 새로운 구조에 필요한 국내 소부장 기업들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겠죠. 예를 들어 인텔의 검사장비를 담당하는 인텍플러스, ZAM 구현에 필수적인 고압 수소 장비를 만드는 HPSP, 그리고 새로운 적층 방식에 필요한 면 레이저 본딩 기술을 가진 레이저쎌 같은 기업들입니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경계심을 늦춰선 안 됩니다. 현재의 미·일 동맹은 단순한 기술 협력을 넘어, 한국을 배제한 채 견고한 '반도체 요새'를 구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새로운 글로벌 기술 표준에서 우리나라가 소외된다면 개별 종목의 성장을 넘어 국내 반도체 산업 생태계 전체가 고립되는 위기에 직면할 수 있습니다.
특히 양국이 후공정 분야에서 밀착하는 것은 TSMC를 필두로 한 대만의 반도체 생태계를 견제하는 동시에, 한국이 상대적으로 취약한 것으로 평가받는 후공정에서의 입지를 좁히려는 전략적 포석으로 풀이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