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 간 휴전 움직임이 본격화한 가운데 걸프 국가들 사이에서 불편한 기색이 감지되고 있다. 전쟁 자체도 원치 않았지만,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영향력을 강화한 채 상황이 마무리될 가능성에 대해 더 큰 우려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영국 텔레그레프는 9일(현지시간) 아랍에미리트(UAE),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산유국들이 최근 전개되는 휴전 국면을 불안한 시선으로 지켜보고 있다고 보도했다.
걸프국 당국자들과 기업인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하는 성급하고 혼란스러운 휴전이 이란이 지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호르무즈 해협을 통제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UAE, 사우디, 카타르, 바레인 등 부유한 걸프 산유국들은 이번 전쟁 과정에서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 공격은 미군 기지뿐 아니라 에너지 시설과 상업·주거 지역까지 겨냥했고, 이로 인해 정유시설과 액화천연가스(LNG) 설비 등 핵심 인프라가 파손됐다.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석유와 가스 수출도 차질을 빚었다. 피해 규모는 수백억파운드(수십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경제적 손실 못지않게 지역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흔들린 점도 큰 타격이다. 안정된 투자처로서의 이미지가 약화되면서 투자자 이탈과 관광·외국인 유입 감소 등 장기적인 후폭풍이 우려된다.
이런 탓에 걸프국 사이에서는 이란이 미국에 패배하지 않고 단지 전보다 군사력이 약화한 채로 남는 것은 오히려 지역 미래에 불안만 가중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특히 에너지 수출과 생필품 수입을 호르무즈 해협에 의존하는 걸프국의 구조상 이란이 해협 통제력을 확보하고 통행료 부과까지 추진하는 시나리오는 최악으로 꼽힌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해협 통제와 관련해 미국과 이란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방안까지 거론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일 ABC와 통화에서 "우리는 이를 합작사업(joint venture)으로 진행하는 방안을 생각해보고 있다"며 "이는 해협을 보호하는 동시에 다른 많은 세력으로부터 해협을 지키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걸프국들이 이처럼 당혹스러운 상황에 연거푸 맞닥뜨리고 있지만 여전한 이란의 위협으로부터 미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이들 국가가 공개적으로 미국에 불만을 드러낼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관측이 많다.
텔레그레프는 "워싱턴의 신뢰성에 의구심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며 "이 지역 정부들은 여러 결함에도 불구하고 이란을 억제할 수 있는 국가는 결국 미국뿐이라는 점을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