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이 2주 휴전에 합의하면서 뉴욕 증시와 각종 위험자산 가격이 가파른 상승을 기록했다. 양측은 오는 주말 전쟁 종식을 위한 협상을 진행할 예정인 가운데, 휴전 요건에 대한 해석을 두고 날선 신경전을 이어갔다.
현지시간 8일 뉴욕증권거래소(NYSE)에서 S&P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2.51%, 166.96포인트 오른 6,782.81, 나스닥 종합지수는 약 617포인트, 2.80% 상승한 2만 2,634.99를 기록했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하루 만에 1325.46포인트, 2.85% 급등하며 4만 7,909.92로 거래를 마쳤다.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행 재개 기대가 더해지면서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중질유 5월 인도분은 14.7% 내린 배럴당 96.36달러를 기록했고, 북해산 브렌트유 역시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11.83% 하락해 배럴당 96달러선에서 거래됐다.
시장은 전날 저녁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했던 최후통첩 마감을 90분 남긴 시점 파키스탄의 2주 휴전 안을 양측이 수용한다는 발표로 급등했다. 다만 본격 협상을 앞둔 미국과 이란 양측의 날선 공방으로 인해 월가는 추가 상승에 대해 보수적인 전망을 내놓고 있다.
이번 2주간의 휴전과 본격적인 협상에서 이스라엘의 움직임은 큰 변수가 되고 있다. 이날 이스라엘은 레바논 지역 헤즈볼라를 겨냥한 공습을 이어가면서 이란의 강한 반발을 일으켰다.
이란 의회 의장인 모하마드 바게르 갈리바프(Mohammad-Bagher Ghalibaf)는 이날 오후 성명을 통해 미국과 이스라엘이 휴전 협정을 이미 세 차례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갈리바프는 이란의 우라늄 농축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도록 한 점과 휴전 기간 내 이란 영공에 드론이 진입한 것을 문제 삼았다. 또한 이날 추가 공습이 이뤄진 레바논 지역에 대해 휴전 조항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갈리바프 의장은 “이런 상황에서 양자 휴전이나 협상은 불합리하다”면서도 오는 토요일로 예정한 회담 자체는 부인하지 않았다.
미국 협상팀 대표인 J.D. 밴스 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란이 핵무기를 개발하면 제재 완화는 없다”면서 “레바논이 휴전의 일부라고 밝힌 적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어느 휴전이든 진행 과정의 혼란이 있기 마련”이라면서 폭격을 완전히 멈추기까지 시간이 필요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이란이 제시한 것으로 알려진 10개 평화안에 대한 혼선도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2주간의 휴전을 수용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자신의 트루스 소셜을 통해 평화안의 세부 내용이 공개된 것에 대해 불만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그는 ”미국이 수용 가능한 포인트는 하나뿐"이라며 비공개 회의를 통해 협상에 나가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캐롤라인 리빗 백악관 대변인도 이날 회견에서 이란의 10개 조항의 평화안에 대해 "근본적으로 진지하지 않고, 완전히 폐기됐다"고 일축했다.
미국은 오는 11일 중재국인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 J.D.밴스 부통령과 스티브 위트코프·제러드 쿠슈너 특사로 구성된 대표단을 통해 이란 측과 첫 대면 협상에 나선다.
◆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 4척뿐…정상화 우려 지속
휴전에 대한 선의의 표시로 이란이 재개방하기로 했던 호르무즈 해협의 정상화는 더딘 진행을 보이고 있다. 에너지 분석 기관인 케이플러(Kpler)에 따르면 이날 해협을 통과한 선박은 벌크선 4척, 유조선은 한 척도 통과하지 못했다. 이란측은 해협에 깔아둔 기뢰로 인해 운항하지 못하는 선박들을 위한 대체 항로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이란 전쟁 전 하루 약 135척이 오가던 요충지로, 지난주까지 아라비아 반도쪽 넓은 항로 대신 이란측이 통제하는 케슘섬-라라크섬의 좁은 구간을 통해 중국, 인도, 일본, 프랑스 등 일부 제한적으로 통행 허가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해협 재개방을 위한 협상에서 통행 수수료를 이란과 합작사업 방식으로 풀어내겠다는 입장을 보여왔다. 백악관 대변인은 이를 확정한 것은 아니라면서도 구체적인 설명은 피했다. 그러나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CSIS의 중동 전문가인 모나 야쿠비안은 이란 군이 해협 통행을 조율하는 것 자체가 "이란 정권에 대한 거대한 양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월가는 해협의 완전한 정상화가 어렵다는 회의적인 시각을 내놓고 있다. RBC 캐피탈 마켓의 에너지 분석 전문가인 크로프트도 ”드론과 미사일이 날아다니는데 누가 선박을 보내겠느냐”면서 이번 재개방 시도가 혼선을 키울 것으로 우려했다.
야누스 헨더슨의 노아 바렛 에너지·유틸리티 분석가는 “수도꼭지를 돌리듯 전쟁 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면서 지하 저류층 압력 안정화와 수십 곳 시설 수리를 감안하면 정상화에 수개월이 걸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 역시 이날 보고서를 통해 전쟁 직후 하루 1,100만 배럴의 원유 생산이 중단 상태로 재가동에 수주~수개월이 소요된다고 분석했다.
◆ ‘매도 압력 소진’…늘어난 4월 시장 회복 기대
지정학적인 위기가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상태이지만, 시장은 전쟁 직후에 비해 4월 시장의 회복 가능성에 무게를 싣고 있다.
전날 휴전 발표로 인해 이날 시장이 급등한 힘은 기관들의 누적된 공매도 청산(숏커버링) 영향이 크다. 골드만삭스 트레이딩 데스크에 따르면 헤지펀드의 미국 주식 하락에 대한 공매도 청산 규모가 2020년 3월 팬데믹 반등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 움직임에 대해 CFRA의 샘 스토발 수석 전략가는 1990년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 시점과 현재의 상황이 비슷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당시 유가가 정점을 기록한 뒤 3개월간 S&P500 지수가 12.4% 오르고 주도 섹터의 순환이 나타났다”면서 “휴전이 유지된다면 유사하게 방어주에서 경기 순환주로의 자금 회전이 일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시타델 증권의 스캇 럽너 주식 파생상품 전략책임자는 전날 발간한 월간 전략 보고서에서 “투자자들의 포지셔닝이 가벼워지고, 매도 압력은 소진됐다”면서 “지정학 리스크의 재연이 없다면 상방으로 비대칭적인 움직임이 가능한 구조”라고 진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소매 투자자들이 현금과 옵션 거래에서 지난달 동시에 순매도로 전환한 것은 2020년 이후 18번째 항복 신호에 해당한다.
스캇 럽너는 이를 두고 과거 이러한 신호가 발생한 뒤 약 두 달에 걸쳐 82% 확률로 시장은 상승했고, 평균적으로 4.1% 수익률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다음 주 본격적인 1분기 실적 시즌 돌입에 따른 기대치도 상승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시타델은 S&P 500 선행 PER이 작년 10월 23배에서 19.5배로 내려왔고 EPS 추정치는 상승하는 등 1분기 실적이 반영될 이달 하순 반등 가능성을 예상했다.
골드만삭스 자산운용도 이날 보고서에서 AI 인프라에 대한 지출이 지속되는 상황임을 반영해 반도체 주식에 대한 노출을 유지할 것을 권고했다.
◆ 전쟁 이후 첫 물가지표…약해진 통화 완화 기대
시장이 짧은 안도를 보인 가운데 이번 주 후반은 2월 미국의 개인소비지출 물가지수, 4분기 GDP 확정치에 이어 전쟁 직후 물가를 반영한 3월 소비자물가지수 발표가 예정되어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번 전쟁 장기화에 따른 공급망 악화, 수요 붕괴 가능성 등은 금리인하에 대한 명분이 되어왔지만, 휴전과 양측간 협상이 길어질 경우 연준이 먼저 움직일 여력이 크게 줄어들 수 있다고 전했다.
이날 공개된 연준 3월 의사록에서 인하를 시사한 위원과 인상 가능성을 주장한 위원들의 비중이 대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달 전쟁 초기 유가 상승을 일시적으로 보는 위원들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지만, 인플레이션 압력이 도드라질 경우 금리 완화 가능성은 더욱 약해지는 구조다.
금요일 발표되는 3월 CPI 컨센서스는 전월 대비 0.9%로, 2월의 0.3%에서 큰 폭으로 상승할 전망이다. 호르무즈 해협의 실질적인 유조선 통행 여부와 토요일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서의 미국-이란간 첫 대면 협상까지 시장의 긴장이 이어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