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피해자 '안락사' 선택...정신적 고통도 사유 되나

입력 2026-03-27 07:16


집단 성폭력 피해를 입은 후 그 충격에 투신했다가 하반신이 마비된 스페인 20대 여성이 장기간 법정 공방 끝에 안락사로 사망했다.

이에 정신적 고통도 안락사 사유가 될 수 있는지를 두고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의 25세 여성 노엘리아 카스티요 라모스는 이날 바르셀로나 소재 병원에서 의료진의 조력을 받아 안락사했다고 26일(현지시간) 아르헨티나 매체 라나시온, 페르필, TN 방송 등이 보도했다.

그녀는 2022년 세 명의 남성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이후 같은 해 10월 건물 5층에서 투신했으며, 이로 인해 척수 손상을 입어 하반신 마비 상태가 됐다. 이 때문에 만성 신경통과 요실금 등으로 극심한 신체적 고통을 겪었고, 정신적 고통 역시 심했다.

그녀는 정신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았지만 크게 호전되지 않았고 수차례 더 극단적 시도를 했다.

결국 노엘리아는 2024년 안락사를 공식 신청했다. 카탈루냐 평가위원회 역시 "회복 불가능한 상태이자 지속적이고 견딜 수 없는 고통"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이를 승인했다.

그러나 그녀의 아버지가 종교단체의 지원으로 절차 중단을 요구해 장기간 법정 다툼이 이어졌다.

사건은 카탈루냐 법원과 스페인 대법원, 헌법재판소에 이어 유럽인권재판소까지 올라갔다. 결국 모든 사법기관이 당사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했다.

노엘리아는 생전 인터뷰에서 "더 이상 고통받고 싶지 않고 평화롭게 떠나고 싶다"며 "가족의 행복이 내 삶보다 우선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그녀는 어린시절부터 매우 불우하고 어려운 환경에서 성장했고, 정신 건강 문제 때문에 어려서부터 상당기간 보호시설에서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은 스페인 안락사 제도 시행 후 최고 사법 단계까지 이어진 첫 사례다. 이에 현지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노엘리아는 말기 환자가 아닌데다 20대 젊은 나이에 안락사를 승인받았다. 그의 신체적 고통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도 중요한 사유로 인정됐다는 점에서 논란이 커지고 있다.

정신적 고통을 근거로 안락사 허용을 하는 것이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으며, 치료 가능성을 충분히 검토하지 않고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허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이를 반대하는 쪽은 주장한다.

반면 찬성 측은 환자의 의사결정 능력과 자발성이 복수의 의료진과 전문가 평가에서 확인된 만큼, 자기 결정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례가 전세계에서 '존엄사'와 '죽을 권리'를 둘러싼 논쟁을 더욱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