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두 달 연속 기준금리를 동결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도한 이란 전쟁의 여파 속에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면서 연준의 추가 인하 시점은 올해 말로 늦춰질 가능성이 커졌다.
전쟁 개시 19일째인 이날 이스라엘은 이란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파르스를 공습하면서 북해산 브렌트유 가격을 배럴당 110달러 위로 끌어올렸다.
이날 제롬 파월 의장의 다소 매파적인 발언과 전쟁 여파로 인한 에너지 가격 상승이 겹치면서 뉴욕 증시 3대 지수는 일제히 하락했다. 18일(현지시간) S&P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36%, 나스닥 종합 지수는 1.46% 밀렸고,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768포인트 하락했다.
미국 달러화 인덱스가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0.66% 상승한 100.23까지 치솟으면서 나머지 통화는 물론 국제 금가격까지 끌어내렸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에서 4월 인도분 금 선물 가격은 하루 만에 3.68% 내린 4,823달러를 기록했다.
◆연준, 올해 추가 인하 여력…파월 "후임 인준 늦어지면 직무대행"
미 중앙은행에 해당하는 연방준비제도는 올해 두 번째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 결과 기준금리를 현행 연 3.50~3.75%로 유지하기로 결정했다. 트럼프 행정부 정책 기조 변화로 연준 내부 분열은 지속됐으나, 이날 투표권을 가진 12명 가운데 크리스토퍼 월러 이사가 동결 찬성으로 돌아섰으며 스티븐 미란 이사만 25bp 인하를 주장하며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파월 의장은 이어진 기자회견에서 관세 영향 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지속되고 있다면서 현재 금리는 중립금리의 상단 또는 다소 제약적인 수준이라고 밝혔다. 이날 연준이 함께 공개한 경제전망(SEP)에서 19명의 위원 가운데 12명은 올해 최소 1번 이상의 금리 인하를 예상했으며 나머지 7명의 위원은 동결을 주장했다. 지난 12월 회의와 비교해 4~5명의 위원은 당초 2회 인하에서 1회 인하로 입장을 바꾸는 등 매파적 기류가 커진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관련 파월 의장은 “오늘 회의에서 다음 움직임이 인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논의했다”며 “대다수 참석자는 이를 기본 시나리오로 보지 않지만, 그렇다고 논의 선상에서 제외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인플레이션과 관련해 “관세는 작년 중후반에 걸쳐 부과되었고, 경제를 관통하기까지 8개월에서 11개월, 1년 정도 걸린다”면서 “고용 시장은 더 낮은 금리를 요구하고, 인플레이션 위험은 상방인 어려운 상황에서 현재 수준의 금리가 적절하다”고 설명했다.
연준의 FOMC 이후 선물 시장은 연내 금리 인하 시점을 크게 미뤘다.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선물시장 거래를 바탕으로 금리 인하 시점을 예상한 페드워치(FedWatch)에 따르면 올해 첫 금리 인하 시점은 당초 9월에서 오는 12월 첫 통화 완화에 나설 가능성을 69.4% 확률로 반영하고 있다.
연준은 올해 인플레이션 전망에서 PCE 물가지수는 헤드라인 기준 2.7%, 근원 PCE 2.7%로 3개월 전보다 각각 0.3%포인트, 0.2%포인트씩 상향했다. 파월 의장은 근원 인플레이션 약 3% 가운데 0.5~0.75%포인트가 관세 효과로 "순수하게 보면 인플레이션에서 진전을 이루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이날 파월 의장은 이란 전쟁으로 인한 에너지 가격 영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변을 회피했다. 그는 “경제적 영향이 더 클 수도, 더 작을 수도 있으며 우리는 모른다”고 말했다.
노동시장에 대해 파월 의장은 이민 감소로 노동력 증가 자체가 거의 없어서 발생한 이례적 균형이라면서 “편안한 균형으로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AI 기술 발전에 따른 영향에 대해서도 “생성형 AI 효과는 본격 반영되지 않았으며, 이렇게 오래 높은 생산성이 지속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파월 의장은 연준 증축 과정을 둘러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의 법적 공방에 대한 강경 대응 입장도 쏟아냈다. 지난 13일 연방 법원의 제임스 보스버그 판사가 이번 수사를 “파월 의장을 괴롭히고 압박하려는 목적일 뿐”이라며 형사 소환장 2건을 기각하면서 관련 발언에 힘이 실린 양상이다.
파월 의장에 대한 수사 여파로 트럼프 대통령이 지명한 케빈 워시 전 연준 이사의 인준에도 차질을 빚고 있다. 톰 틸리스 공화당 상원 의원은 파월 의장에 대한 수사를 끝내기 전까지 차기 인준 표결에 반대하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대해 파월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 중 “임기 만료일인 5월 15일까지 후임 인선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 의장 대행으로 직무를 수행하겠다”고 밝혔다. 파월 의장은 또한 “진행 중인 조사가 투명성과 완결성을 갖추고 마무리 되기 전 이사회를 떠날 의사가 없다”면서 강경 대응 입장을 고수했다.
◆브렌트유 52주 신고가…중동 에너지 인프라 붕괴 우려
연준의 매파적인 정책 기조 속에 이날 에너지 가격이 추가 상승하면서 시장을 끌어내렸다. 국제유가는 이스라엘과 이란이 연달아 에너지 인프라 공격에 나선 여파로 장중 내내 상승폭을 키웠다. 런던 ICE 선물시장에서 북해산 브렌트유 5월물은 배럴당 110.21달러로 전일 대비 6.79달러(6.57%) 올라 52주 신고가를 경신했다.
이스라엘은 이날 이란과 카타르가 공유하는 세계 최대 가스전인 사우스 파르스를 공격하고, 경제적인 타격을 본격화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스라엘은 알리 라리자니 이란 최고안보 책임자, 민병대 지도자인 골람레자 솔레이마니를 연달아 사살하는 등 지역 내 긴장 수위를 높여왔다.
이란도 이날 보복에 나서 카타르 라스라판 LNG 허브를 탄도미사일로 타격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수도 리야드를 향해 날아오는 이란 탄도미사일 4기를 요격하는 등 군사적 대응 범위도 커지고 있다.
이번 에너지 인프라 타격과 관련해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대통령이 공습 사실을 사전에 통보받았으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에 대한 직접적 경고 메시지로 이를 용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다만 이날 공습 이후 추가적인 에너지시설 타격에 대해서는 중단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 내 디젤 가격이 2022년 최고치를 기록하고, 가솔린 가격이 갤런당 3.8달러를 돌파하는 등 에너지 위기 가능성이 커지면서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J.D.밴스 부통령은 오는 19일(현지시간)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 장관과 미 석유업계 등을 만나 유류 가격 안정을 위한 추가 조치를 발표할 예정이다.
이라크와 쿠르드 자치정부가 터키 제이한 항구를 통해 일일 25만 배럴을 수출하는 송유관 합의에 도달하면서 한때 유가 상승 폭이 둔화하기도 했지만 근본적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JP모건의 나타샤 카네바 애널리스트에 따르면 이번 주까지 원유와 석유 제품을 더한 공급 차질 규모가 하루 1200만 배럴로 전세계 수요 대비 10% 수준에 달할 것으로 나타났다. 카네바 애널리스트는 “하루 약 700만 배럴 부족분을 시장이 감당하는 방법은 이에 맞는 소비 감소뿐”이라고 경고했다.
칼라일 그룹의 에너지 전문가인 제프 커리 이코노미스트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공급 충격은 코로나 초기 수요 충격과 맞먹는 규모”라며 “유가가 현재 이를 완전히 반영하지 못했다”고 우려했다. 미즈호증권의 로버트 야거 원자재 전문가도 "에너지 인프라에 대한 공격받은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입장을 누그러뜨릴 가능성은 매우 낮다"면서 사태 장기화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