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이 그동안 직접 행사해 온 의결권을 민간 운용사에 넘기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5일 알려졌다. 국내주식 투자 수익률을 높이고 이른바 '관치금융'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지난달부터 이어진 전문가 위원회에서는 국민연금의 영향력 약화와 책임 외주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쏟아지며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 투자일임→단독펀드…12.9조 책임투자형부터 우선 위임
추진 방향의 핵심은 기존 '투자일임' 방식을 '단독펀드'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다. 위탁운용사가 보유한 지분에 대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직접 결정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국민연금이 의결권 위임을 추진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접적인 주주권 행사가 초래하는 과도한 영향력을 줄이기 위해서다. 현재 모든 위탁 자산의 의결권을 국민연금 명의로 행사하다 보니 대량보유공시 의무가 뒤따르고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우선 12조 9344억원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8개 운용사의 책임투자형 펀드(비중 9.6%)부터 위임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위탁운용사가 지켜야 할 수탁자 책임활동 기준을 마련하고, 국민연금이 제시하는 기준을 준수했는지 정도를 평가해 자금배정에 반영한다는 방침이다.
▲ 수탁자책임전문위원회(수책위) 찬반 엇갈려
해당 안건을 사전 검토한 수책위에서는 의결권의 완전 위임 여부를 두고 위원들 간 시각차가 뚜렷했다.
찬성 측은 의결권 행사는 수익률 제고 전략의 일환이므로 운용 위탁과 의결권 위임이 일치돼야 투자 전략의 효과가 극대화된다는 논리를 폈다.
반대 측은 국민연금의 집중된 지분이 여러 운용사로 쪼개지면 유의미한 영향력이 사라져 '실질적 역할 부재' 상태가 될 것이라 우려했다.
아울러 국내 자산운용사들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대로 수행할 역량이 있는지, 기업들이 여러 운용사를 상대해야 하는 부담이 가중되지는 않을지도 쟁점이 됐다. 이와 관련해 자산 규모나 실현 가능성 등을 고려해 단계적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실무평가위원회(실평위)서도 강경한 반대 기류
실평위 논의에서는 특히 노동계를 중심으로 더욱 강한 비판이 제기됐다.
민주노총 등 노동계 위원은 "순환출자 구조를 가진 한국에서 공적 연금의 견제는 필수적인데, 이를 '과도하다'고 하는 의미를 모르겠다"며 반발했다. 이들은 이번 방안을 연금의 책임을 민간에 떠넘기는 '외주 주기'이자 '민영화 논리'라고 비판했다. 의사록에 반대 의견을 남길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국민연금이 관치금융 논란을 과도하게 해석하고 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한 실평위 참석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사실상 기업 운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거나 자유로운 활동을 제약하지 않는 상태"라며 "누가, 얼마나,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에 대해 우려를 하는지 실체가 부재하다"고 언급했다.
수탁자 평가 체계를 먼저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수탁자 책임 활동 관리체계 강화방안을 우선 수립하고, 위탁운용사의 이행정도를 평가한 뒤 이 결과에 따라 의결권 권한을 부여하는 순서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 오늘 기금위 보고 후 TF 구성
기금운용본부는 이러한 전문가 위원회들의 의견을 종합하여 오늘(5일) 오후 2시 열리는 기금운용위원회에 '단계적 추진 계획'을 보고할 예정이다.
기금운용본부는 TF를 구성해 위탁운용사 평가 체계 개편 등 세부 방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기금위 계획 보고를 시작으로 상반기 내 개선안 수립, 연내 기금위 의결 후 본격 시행을 목표로 하고 있다. 다만 노동계와 일부 전문가들의 반대 목소리가 워낙 큰 만큼, 오늘 오후 열릴 기금위 본 회의에서도 뜨거운 설전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