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한국전력과 한국수력원자력이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추가 공사비 정산 문제를 두고 해외에서 벌이고 있는 중재 분쟁을 국내로 옮길 것을 공식 권고했다.
과도한 소송비용과 분쟁 장기화, 원전 기술 해외 유출 우려를 줄이기 위해서다.
산업통상부는 27일 문신학 차관 주재로 제29차 적극행정위원회를 열어 한수원이 한전을 상대로 영국 런던국제중재법원(LCIA)에 신청한 중재를 대한상사중재원(KCAB)으로 이관할 것을 양 기관에 권고했다고 밝혔다.
또 단순히 중재기관을 변경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두 기관이 정기 협의체를 구성해 근본적인 합의방안을 계속 논의할 것을 주문했다.
이번 산업부의 권고안은 두 기관의 이사회 심의·의결 등 내부 의사결정 절차를 거쳐 자율적으로 결정하게 된다.
산업부 관계자는 "이번 권고와 관련해 양 기관 간에 상당 부분 합의가 돼 있다"고 설명하며 수용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했다.
현재 한전과 한수원은 한국형 원전 수출 1호 사업인 UAE 바라카 원전을 두고 1조4천억원대(10억 달러) 상사 분쟁을 벌이고 있다.
바라카 원전은 한전이 발주하고 한수원이 건설했는데, 설계 변경과 공사 지연으로 추가 공사비가 발생하자 한수원은 공기 지연, 추가 작업 지시 등으로 늘어난 비용을 주계약자인 한전에 요구했다. 이에 대해 한전은 UAE 측으로부터 먼저 정산을 받아야 줄 수 있다는 입장으로 맞서고 있다.
결국 정산 문제를 놓고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자 한수원이 한전을 상대로 "1조4천억원을 달라"며 중재 신청을 낸 것이다.
한수원은 2010년 5월 한전과 바라카 원전의 운영지원용역(OSS) 계약을 체결했는데, 계약서에는 합의 결렬 시 상사 중재는 영국에서 한다는 조항이 있어 해외에서 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추가 공사비를 놓고 모기업과 자회사인 한전과 한수원이 이례적으로 국내외 대형 로펌을 동원해 국제 중재까지 나서면서 법적 다툼을 벌이자 지난해 국정감사에선 소송 과정에서 영국계 로펌과 컨설팅 회사에 각종 자료가 들어가면서 핵심 기술 정보가 해외로 유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김정관 산업부 장관 역시 지난해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와 관련한 질의에 "있을 수 없는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산업부가 이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산하기관 경영에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한다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제3조(자율적 운영의 보장) 규정 때문이다.
특히 양 기관이 명확한 법적 판단 없이 분쟁 방식을 변경하면 기관에 손해를 끼쳤다는 이유로 배임 책임이 제기될 수 있어 권고 수준의 중재에 나설 수 밖에 없다는 게 산업부의 설명이다.
산업부는 한수원이 산업부의 권고안을 수용하고 중재 사건을 KCAB로 이관할 경우, 두 기관의 비용 부담이 줄고 원전 기술의 해외 유출 우려도 덜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다만 산업부는 중재 장소를 국내로 옮긴다고 해서 로펌을 이미 선임한 상태라 비용이 획기적으로 줄어드는 것은 아닐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비용 자체보다 중재 기간을 줄이는 것이 핵심"이라며 "국내에서 진행하면 절차가 보다 신속해져 결과적으로 비용 절감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양측이 선임한 법률대리인 비용만 총 370억 원에 달해 분쟁이 길어질 경우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정부가 국내 이관을 권고한 배경엔 보안 문제도 있다. 중재 과정에서 설계·운영 등 민감한 원전 기술 자료가 공개될 수 있는데, 해외 중재 기관을 이용할 경우 기술이 유출될 수 있다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국내 중재로 전환하면 이런 위험을 상대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다.
정부는 이번 권고가 단순히 중재 장소 변경을 넘어 두 기관 관계 정상화의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김창희 산업부 원전전략기획관은 "이번 산업부의 권고를 계기로 한전과 한수원이 그간의 갈등 관계에서 벗어나고, 국제사회와 해외 파트너로부터 신뢰받는 사업자로서 위상을 강화해 나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