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던 금값이 케빈 워시 차기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 지명 이후 대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1년 이상 동안 금값 상승세가 말이 뛰는 식으로 오르는 갤로핑 국면이 지속돼온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이 문제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작년 이후 금값이 왜 올랐는가에 대한 결정요인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금과 은은 전쟁 발생과 같은 지정학적 위험이 높아지면 으레껏 안전자산으로 추천됐다. 작년에는 달러화와 미국 국채 위상이 종전만 못해 ‘최후 보루(final draw)’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였다. 실질 가치가 매장량 한계 등으로 늘 보전해 있는 점을 들어 인플레이션이 우려될 때마다 헤지 수단으로도 선호됐다.
하지만 작년 이후 금과 은은 지정학적 위험과 인플레이션 여부와 관계없이 지속적으로 올랐다. 세계지정학적지수(WGI)와 금 가격 간 상관계수를 보면 작년까지 0.8에서 0.3 내외로 의미가 없는 수준까지 떨어졌다. 케빈 워시 지명 직전까지 그린란드, 스발바르 등 북극 인접 국가(NPAC·North Pole Area Countries)를 놓고 19세기 제국주의 상징인 아프리카 쟁탈전에 비유되는 북국 쟁탈전(scramble for the arcti)이 벌어비는 신제국제주의 움직임에도 금과 은값이 계속해서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인플레이션 헤지수단으로 유용성도 작년 9월 이후 세계물가지수(WPI)와 금 가격 간 상관계수는 아예 마이너스 국면으로 전환됐다. 국가부도와 관련해서도 2011년 셧다운 종료 이후 금은 1900달러에서 1060달러로, 은은 30달러대에서 14달러대로 폭락(flash crash)했지만 이번에는 셧다운이 최장기로 길어졌는 데도 종료 이후 급등(skyrocketing)세를 나타났다. 금과 은은 전쟁, 물가, 국가부도 여부와 관계없이 오르는 것은 가격 결정 요인에 구조적인 변화가 일고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뉴노멀’이 붙을 정도로 금과 은값의 고공행진을 지속시키는 요인으로 ‘탈법정화폐 거래(debasement trade)’를 우선적으로 꼽는다. 탈법정화폐 거래란 법정화폐에 대한 신뢰가 떨어져 실질 가치와 화폐 기능을 동시에 지닌 투자 대상이 선호되는 트렌드를 말한다. 200년 이상 지속돼온 법정화폐가 사라지면 각국 중앙은행 통화 정책과 국민의 화폐 생활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명목상 종이에 불과한 법정화폐가 제 기능을 수행하려면 국가가 부여한 공신력에 대한 신뢰가 깨져선 안 된다. 법정화폐의 공신력은 양대 요건에 따라 좌우된다. 하나는 독점적인 주조권이 흔들리지 말아야 하고 다른 하나는 물가 안정 목표가 잘 지켜져야 한다. 두 조건 모두 중앙은행의 독립성과 연관된다.
트럼프 집권 1기부터 우려됐던 미 중앙은행(Fed)의 독립성은 2기 들어 급격히 훼손되고 있다. 통화정책 목표 수정, 기준금리 변경, 차기 의장을 포함한 Fed의 개편, 예고 없는 Fed 방문, Fed 예산안 장악 등으로 흔들어왔기 때문이다. Fed 설립 후 대통령과 Fed 의장 간 갈등 지수를 추적해 보면 트럼프 대통령과 제롬 파월 의장 때가 최고 수준이다.
미란 보고서와 함께 트럼프노믹스 2.0의 근간인 ‘프로젝트 2025’의 시나리오대로 간다면 Fed는 독립성 훼손을 넘어 트럼프 대통령의 시녀로 전락한다. 개편을 넘어 궁극적으로 폐지하는 방안까지 담겨 있어서다. 중앙은행의 독점적인 주조권도 코인 등 민간에서 발행한 대안화폐를 통해 분산화한다는 계획이다.
중앙은행 독립성이 훼손되면 1선 목표인 물가 안정은 요원해진다. 최근처럼 성장률(g)이 이자율(r)보다 높으면 빚을 내 돈을 더 써도 좋다는 토마스 피케티 공식과 현대통화이론에 근거한 재정 지출이 유행한다. 이럴 때 중앙은행이 길항 역할을 못하면 물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트럼프 대통령 요구대로 금리까지 낮추면 물가가 말이 뛰는 식으로 오르는 ‘갤로핑 하이퍼 인플레이션’ 국면도 닥칠 수 있다.
양대 조건이 흐트러져 법정화폐의 신뢰가 떨어지면 퇴장했던 통화가 빠르게 제도권으로 진입할 수밖에 없다. 화폐의 3대 기능 중 이미 거래와 회계의 단위로 대안화폐가 보편화된 여건에서는 가치 저장 기능으로 법정화폐 보유에 따른 기회비용이 증가하기 때문이다. 최근 들어 경기순환 국면과 관계없이 통화유통속도, 통화승수와 같은 경제 활력 지표가 높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나오는 현상이다.
탈법정화폐 거래 최적의 대안으로 화폐와 인플레이션 헤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는 금이 급부상하고 있다. 달러화와 미국 국채의 신뢰가 떨어지면서 안전자산 선택 범위가 제한된 것도 금값 상승 요인이다. 중심 통화를 달러 대신 금으로 되돌려야 하지 않느냐는 금본위제 논의가 오랜만에 고개를 들고 있다.
전통적인 재테크 대상인 주식과 채권만 놓고 보면 주식이 더 유리하다. 금융이 실물을 주도하는 시대엔 위험자산과 안전자산 간 반비례 관계가 약화했다. 2024년 9월 이후 Fed가 금리를 낮추는 여건에서 주식 수익률이 국채보다 높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Fed를 비롯한 중앙은행 독립성이 회복되지 않으면 탈법정화폐 거래는 더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결론부터 말한다면 틸법정화폐 거래는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올해는 차기 의장까지 포함해 트럼프 정부가 Fed를 장악하는 실질적인 첫해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중앙은행도 통수권자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yes(자유롭다)’고 답할 수 있는 곳은 유럽중앙은행(ECB)이 유일하다.
올해에도 금을 비롯한 귀금속과 주식이 계속해서 유망할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차기 Fed 의장으로 지명된 케빈 워시는 Fed의 독립성과 달러화 위상은 강화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케빈 워시로 지명한 직후 금값과 은값이 대폭락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앞으로 탈법정화폐 거래는 트럼프 트레이드처럼 누그러질 확률이 높은 만큼 금, 은 등 귀금속 가격은 제자리를 찾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