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도 사이를 오간 이들, ‘반쭈안’의 시대를 기록하다
암호화폐 시장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김치프리미엄’ 현상을 사회·경제적 맥락 속에서 분석한 도서 ‘김치프리미엄’이 출간됐다. 이 책은 동일한 디지털 자산이 국가에 따라 다른 가격으로 거래됐던 현상을 단순한 시장 과열이나 투기 열풍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대신 한국 사회의 구조적 조건, 제도적 경계, 집단 심리가 복합적으로 얽히며 만들어낸 하나의 시대적 장면으로 해석한다.
‘김치프리미엄’은 해외 거래소 대비 국내 암호화폐 가격이 높게 형성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한때는 국경을 넘나드는 차익 거래 기회로 주목받았지만, 동시에 자본 이동 규제, 외환 관리 체계, 거래 인프라의 차이, 은행 시스템과의 연계 구조 등 제도적 경계가 만들어낸 시장의 비대칭을 드러낸 사례이기도 했다. 세계는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돼 있었지만, 자금은 여전히 국경 안에 묶여 있었고, 기술은 앞서 달렸지만 제도는 뒤따라왔다. 이 간극 속에서 가격은 단순한 수요·공급의 결과가 아니라, 제도와 기술의 속도 차이가 빚어낸 신호가 됐다.
책에서 특히 주목하는 키워드 중 하나는 ‘반쭈안’이다. 이는 제도와 제도 사이, 국경과 국경 사이를 오가며 기회를 찾았던 이들을 지칭하는 현장 용어다. 합법과 비합법의 경계, 공식 시장과 비공식 경로, 규제의 안과 밖 사이에서 움직였던 사람들을 상징한다. 저자는 이들을 단순한 투기 세력으로 규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제도적 공백과 시차 속에서 나름의 생존 전략을 모색했던 한 세대의 초상으로 그린다. 빠르게 열린 시장과 이를 따라가지 못한 제도 사이의 속도 차이,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개인이 감당해야 했던 불확실성이 이들의 선택을 통해 드러난다. 이들의 이야기는 개인의 일탈이라기보다, 급변하는 기술 환경과 경직된 제도 사이에서 개인이 실제로 선택할 수 있었던 전략의 범위와 한계를 보여주는 사회적 증언에 가깝다.
‘김치프리미엄’은 가격 그래프 이면의 심리뿐 아니라, 블록체인 산업 초기 국면을 경험한 개발자와 운용자들의 시선도 함께 담는다. 초기 생태계 형성 과정을 지켜본 이들의 서사는 기술이 현실의 제도와 맞닿던 과도기의 공기와 속도감을 전한다. 기대와 혼란, 낙관과 불안이 동시에 존재했던 당시의 분위기는 김치프리미엄을 특정 투자 사건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 질서와 기존 금융 시스템이 충돌하며 드러난 장면으로 이해하게 만든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암호화폐라는 특수한 사례에만 국한하지 않는다. 오히려 빠른 기술 수용 능력, 높은 정보 접근성, 제도에 대한 불신과 적응이 동시에 존재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이 응축된 사건으로 해석한다. 글로벌 자산 시장은 실시간으로 연결됐지만, 규제와 금융 시스템은 여전히 국가 단위로 작동했다는 점에서 김치프리미엄은 그 간극이 만들어낸 구조적 장면이었다는 것이다. 이는 글로벌화된 자본 흐름과 국민국가 단위 제도 사이에서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긴장의 한국적 표현이기도 하다.
이 책은 투자 전략이나 수익 모델을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한 시기의 경제적 장면을 면밀하게 기록하고 해석하는 데 집중한다. 누군가는 제도의 틈새에서 기회를 얻었고, 누군가는 손실을 감수했으며, 또 누군가는 혼란 속에서 시장을 떠났다. ‘김치프리미엄’은 그 선택의 연쇄를 통해 기술 변화가 개인과 제도, 욕망과 규범, 기회와 위험 사이에 만들어낸 긴장을 다층적으로 보여준다. 이는 과거를 회고하는 작업이자,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는 기술과 제도의 불일치, 그리고 그 사이에서 개인이 마주하게 될 선택의 문제를 미리 들여다보는 시도다.
출판사 대표는 “암호화폐 시장을 평가하거나 옹호하기보다, 그 시장을 통해 드러난 한국 사회의 구조와 감정의 흐름, 그리고 개인과 집단이 불확실성에 대응하는 방식을 기록한 작업”이라며 “경제 현상을 숫자가 아닌 사람의 이야기로, 시대의 감각으로 읽어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김치프리미엄’은 인문·예술·사회 이슈를 동시대적 시각으로 풀어내는 마로이즘의 출판사 MAM Press에서 출간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