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증시가 성탄절 연휴를 앞둔 24일(현지시간) 일제히 상승세를 보이며 연말 랠리에 대한 기대를 키웠다. 국제 금 선물 가격은 트로이온스당 한때 4,525달러를 돌파하는 등 46년 만에 연간 상승률 최고치를 경신했다.
엔비디아는 AI 추론 반도체 스타트업인 그록(Groq)을 200억 달러(약 28조 9,220억 원)에 인수하며 역대 최대 베팅에 나선 반면, 인텔은 엔비디아의 18A 공정 테스트 중단 소식에 파운드리 재건 계획에 차질을 빚게 됐다.
◆ 산타랠리 시동…지난해까지 이례적 2년 연속 무산
이날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연휴 전날 거래량이 평소 한 달 평균의 절반 수준으로 줄어든 가운데 대부분의 종목이 상승했다.
S&P500 지수는 0.32% 상승한 6,932.05로 역대 최고 기록을 경신했고, 나스닥 지수는 0.22% 오른 23,613.31로 거래를 마쳤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전 거래일 대비 0.6% 오른 48,731.16에 마감했다.
미국 증시는 이날부터 내년 1월 5일까지 이어지는 총 7거래일간의 산타클로스 랠리에 돌입했다. 역사적으로 이 기간 S&P500 지수는 77%의 확률로 상승을 기록해왔다.
다만 2023년 12월말 증시는 미 연방준비제도(Fed)의 기준금리 인하로의 전환 기대로 과도하게 오른 시장과 애플에 대한 투자의견 하향 조정 여파로 1.03% 내렸고, 지난해 12월 말에는 인플레이션 상승과 연준의 점도표에 따른 통화정책 경계감에 2.01% 밀렸다.
1990년대 2년 연속 연말 증시가 하락한 전례가 있지만, 역사상 3년 연속 산타 랠리 기간 시장이 하락을 지속한 사례는 없다.
그럼에도 시장은 올해 주요 지수 상승과 대형 기술기업을 중심으로 한 강세장, 거시 경제 여건 등으로 예기치 못한 하락이 나올 위험을 경계하고 있다. 올해 엔비디아가 사상 처음 시가총액 5조 달러를 돌파하고, 인공지능 투자 열풍에 뒤늦게 합류한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이 4조 달러에 근접하는 등 지수는 꾸준히 고점을 높여왔다. S&P500 지수는 연초 이후 현재까지 18.12%, 나스닥은 약 22%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월가의 대표적 낙관론자인 에드 야데니를 비롯해 UBS에서도 내년 말 S&P500 지수의 기본 시나리오로 약 10% 상승한 7,700선을 제시했다.
그러나 대형 투자은행 뱅크오브아메리카는 지난 8일 "산타가 만일 오지 않는다면”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통해 지난달(11월) 중순 이후 시장의 공포 심리가 크게 낮아지면서 하락에 대응한 헷지 비용이 저렴해졌다고 진단했다.
그래닛 베이의 폴 스탠리 역시 "4년 연속 상승장은 드물다"며 “높아진 밸류에이션으로 인해 추가 상승에 필요한 기준이 높아진 만큼 경제·정책·기업 실적 등에서 완벽해야만 상승이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계했다.
CNN 등에서 집계한 공포 탐욕 지수는 이날 58선으로 지난 달 대비 약 30포인트 가량 올랐고, 시장의 공포 심리를 나타내는 Cboe 변동성지수(VIX)는 전날보다 3.79% 낮아진 13.47로 저점을 낮추고 있다.
◆ 금값 1년 만에 71% 상승…삭소뱅크 “중앙은행 매수, 구조적 지속”
국제 금 선물 가격은 이날 개장 직후 트로이온스당 4,525달러를 돌파하며 사상 최고치를 다시 썼다. 올해 초 2,640달러 수준에서 출발한 금값은 연간 71% 급등하며 1979년 이후 46년 만에 최고의 상승률을 기록 중이다. 다른 귀금속 가운데 은 선물은 올들어 146%, 플래티넘은 150%, 팔라듐은 100% 각각 급등했다.
중동 위기, 인플레이션 급등, 에너지 위기가 겹쳐 금값을 자극했던 지난 1970년대 후반 상황과 이번 금값 상승 배경은 유사하다.
만 4년을 앞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 이스라엘-이란 갈등, 이달들어 본격화하고 있는 미국의 베네수엘라 유조선 압류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안전자산 수요를 자극하고 있다. 연준의 금리 인하 기조도 이자를 지급하지 않는 금의 상대적 매력을 높이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중국과 인도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매수세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서방이 러시아의 달러 자산을 동결하자, 중국 등은 미국 정책 노출을 줄이기 위해 금 매입을 늘려왔다. 전 세계 중앙은행들이 지난 3년간 매입한 금은 연간 1,000톤 이상으로 추산된다.
삭소뱅크의 올레 한센 원자재 전략 헤드는 "현재의 중앙은행 매수세는 지정학에 뿌리를 두고 있어 수년간 지속될 구조적 수요"라고 분석했다. 주요 투자은행들의 금 선물가격에 대한 전망치도 잇따라 상향 조정 중이다. JP모건은 내년 4분기 금값이 트로이온스당 5,000달러를 찍을 수 있다고 봤고, 골드만삭스는 내년 말 4,900달러를 제시하며 "개인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다변화 수요가 확대될 경우 전망치는 더 오를 수 있다"고 밝혔다.
◆ 엔비디아, 그록 200억 달러 인수…마이크론, 사상 최고치
엔비디아는 이날 뉴욕 증시 마감 뒤 AI 추론 반도체 스타트업 그록(Groq)을 약 200억 달러(약 28조 9,220억 원)에 전액 현금으로 인수한다는 소식을 알렸다. CNBC 등에 따르면 엔비디아는 2019년 멜라녹스 인수 당시 지출한 약 70억 달러 이후 최대 규모의 인수 합병을 단행한다.
그록은 구글 TPU 개발 핵심 멤버였던 조나단 로스가 2016년 설립한 기업으로, 거대언어모델(LLM) 추론 속도를 높이는 LPU 기술을 가진 기업이다. 이번 인수로 그록은 불과 3개월 전 자금 조달 당시 기업 가치 69억 달러에서 약 3배 가까운 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엔비디아의 이번 인수는 AI 학습 시장을 넘어 급성장하는 추론 반도체 시장에서 경쟁사에 기회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 유일의 메모리 반도체 기업인 마이크론도 이날 3.77% 급등하며 장중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마이크론은 지난주 실적 발표에서 AI 반도체 매진 등 실적 전망치를 상향 조정하며 월가의 잇따른 매수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지분 투자 등 전폭적인 지원을 받던 인텔은 파운드리 재건에 대한 우려를 키웠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소식통을 인용해 "엔비디아가 인텔의 최첨단 18A 공정을 테스트했으나 더 이상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보도했다.
인텔의 18A 공정은 인텔이 TSMC를 따라잡고 기술 리더십을 되찾기 위한 핵심 기술로, GAA(Gate-All-Around) 트랜지스터와 후면 전력 공급 기술을 적용해 전력 효율과 성능을 끌어올린 첨단 공정이다.
인텔 대변인은 "18A 제조 기술은 잘 진행되고 있다"고 반박했으나, 이날 정규 거래에서 인텔 주가는 0.52% 하락한 36.16달러로 마감했다.
◆ 나이키 '팀 쿡 효과’…AST스페이스모바일, 차익실현에 하락
실적 둔화 충격으로 하락하던 나이키는 이날 4.64% 급등한 60달러로 마감했다. 애플 CEO 이자 나이키 사외이사인 팀 쿡이 주가 하락에도 지난 월요일 약 290만 달러, 총 5만 주 규모를 매입한 것이 호재로 작용했다. 2005년부터 나이키 이사회에 몸담아온 팀 쿡은 이번 매수로 보유 주식을 105,480주로 두 배 가까이 늘렸다.
사노피는 다이나백스 테크놀로지를 총 22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가는 주당 15.5달러로 전일 종가 대비 39% 프리미엄이다. 다이나백스는 이날 38.19% 폭등했다. 사노피는 이번 인수로 초기 임상 단계의 대상포진 백신(Z-1018), B형 간염 백신을 확보하게 된다. JP모건은 "GSK의 대상포진 백신 싱그릭스 점유율을 가져올 잠재력이 있다"고 평가했다.
AST 스페이스모바일은 8.89% 급락한 78.05달러로 마감했다. 전날 인도 우주연구기구(ISRO) 로켓에 실린 '블루버드 6' 위성이 저궤도 안착에 성공했으나 차익 실현 매물이 쏟아졌다. 올해 들어 주가가 약 300% 급등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