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협상 타결 이후에도 좀처럼 내려가지 않던 원-달러 환율이 외국인 투자자마저 차익 실현에 나서자 직격탄을 맞았습니다.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49원까지 치솟으며 약 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최근 1년간 환율은 높은 변동성을 보여왔습니다. 지금으로부터 1년 전 미국 대선이 치러질 당시 원-달러 환율은 1379원이었습니다. 이후 계엄사태와 관세 협상 불확실성 등으로 인해 1487원까지 올랐다가 조기 대선이 치러지고 협상 기대감이 커지며 1350원대 수준까지 내려왔습니다. 하지만 예상보다 지지부진했던 협상 진행과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금을 둘러싼 불확실성 등으로 다시 고개를 들었지요. 급기야 우리 외환당국이 지난달 13일, 환율이 1430원을 뚫자 시장 개입에 나섰습니다만 방향성을 꺾지는 못했습니다.
현재 환율 급등의 배경을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달러가 강세로 전환한 것입니다. 금리 인하 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기대됐던 미국 FOMC 내에서 추가 금리 인하를 둘러싼 이견이 표출되고 있고, 오늘처럼 기술주 등 위험자산에 대한 불안감이 확대되는 시기에는 대표적 안전자산인 달러 선호가 강해지게 됩니다. 달러 인덱스는 지난 8월 이후 처음으로 100p를 다시 넘어섰고, 앞으로 기조적인 달러 강세로 전환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엔화 약세 동조화 현상입니다.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일본 총리가 금리 인상을 미루고 재정 확장에 나설 것이란 기대감에 엔화가 약세입니다. 다만 가타야마 사쓰키 일본 재무상이 지난달 말, 그리고 어제까지 구두 개입에 나서며 엔-달러 환율 상승은 다소 주춤합니다.
해외 투자 환전 수요가 급증한 것도 고환율의 원인입니다. 조정 전까지 코스피 4200포인트로 끌어올린 주역은 단연 외국인인데요, 9월과 10월 외국인이 국내 주식 11조 9천억 원을 순매수하는 동안 국내 투자자의 미국 주식 순매수 규모는 91억 8천만 달러, 한화 약 13조 원에 달했습니다. 서학개미의 해외 주식 투자 확대는 순대외자산 규모가 늘어나는 것이어서 유사시 외환시장 안전판 역할이 기대된다고 하지만 지금으로선 환율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외국인 투자금이 일시에 빠져나가기까지 하니 환율에 상승 압력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지난주 관세 협상 직후 외인의 차익 실현이 본격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어제와 오늘 각각 2조 4천억, 2조 5천억 원씩 순매도에 나서며 겨우 3일간 6조 원어치 국내 주식을 팔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관세 협상이 잘 마무리되었다고는 하지만 200억 달러씩 10년간 대미 투자펀드로의 자금 유출이 예정된 것도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이 같은 요인들이 당장 사라지기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환율이 단기간에 방향을 꺾어 안정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습니다. 일각에선 원-달러 환율이 지금처럼 가파르게 오른다면 외환당국이 또 한 번 구두 개입에 나설 가능성을 점치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많은 시장 전문가들이 환율이 1450원을 뚫을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고 보고 있고요, 높게는 1500원에 근접한 수준까지 오를 것으로 보는 시각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