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하의 현인’ 워런 버핏이 이끄는 버크셔 해서웨이(BRK-A/BRK-B)가 월가의 예상치를 뛰어넘는 강력한 실적을 발표했다. 핵심인 보험 인수 수익이 200% 이상 늘어 전체 영업이익 성장률이 전년대비 34%에 달했다.
그러나 버크셔 해서웨이는 견고한 실적에도 하반기 큰 하락을 보인 회사 주가 부양책은 또 다시 미뤘다. 버크셔는 5분기 연속 자사주 매입을 보류하고, 대신 현금 보유액을 3천816억 달러, 약 545조 원 규모의 사상 최고치로 쌓아올린 것으로 나타났다. 견고한 이익 회복에도 극도로 신중한 현금 운용 전략을 두고 월스트리트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 주력 보험 부문 살아났다..인수 수익 3배 폭증
현지시간 1일 오전 버크셔 해서웨이가 공개한 2025회계연도 3분기 실적 보고서에서 영업이익 134억 8천5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34% 급증했다. 시장이 예상한 실적을 크게 웃도는 이러한 수치는 단연 보험 사업의 이익 회복 덕분이다. 보험 인수(underwritign) 부문 이익은 23억 7천만 달러로 1년 전보다 3배 늘었다. 이번 분기는 올해 초까지 미 서부 지역을 휩쓸었던 대형 산불,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 발생이 이례적으로 적어 재보험과 손해보험 사업 부문이 대규모 흑자로 전환했다.
보험 및 기타 부문의 전체 매출은 816억 6천6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797억 5천100만 달러 대비 소폭 증가했다. 보험료 수입은 224억 4천500만 달러로 작년 같은 기간 대비 약 4억 달러 증가를 기록했다.
다만 미국 2위 자동차 보험사 가이코(GEICO)의 세전 인수 이익은 13%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험료 인상에도 최근 청구 건수가 소폭 증가했고, 광고비 등을 포함한 인수 비용이 40% 급증한 영향이다.
나머지 사업 부문의 실적은 혼조를 보였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부과 영향으로 주춤하던 철도 부문 벌링턴 노던 산타페(BNSF)의 영업이익은 전년 동기 대비 5% 증가한 14억 달러를 기록했다. 농산물과 에너지 제품 운송 수익이 증가하면서 곡물 수출이 소폭 늘어난 것으로 풀이된다. 화물 운송 매출은 59억 8천6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58억 8천500만 달러를 소폭 웃돌았다.
대형 산불 이후 손해배상 소송에 시달리고 있는 에너지, 유틸리티 사업은 이번 분기도 부진한 결과를 보고했다. 미 서부지역을 기반으로 한 전력 자회사 퍼시픽코프(PacifiCorp)를 비롯해 미드아메리칸, NV에너지 등의 유틸리티 사업의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9% 감소한 15억 달러에 그쳤다. 유틸리티 및 에너지 운영 매출은 60억 4천6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60억 1천400만 달러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버크셔 해서웨이가 지난해 완전 자회사로 흡수한 트럭 정유, 휴게소 전문 업체인 파일럿(Pilot)은 3분기 1천700만 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버크셔는 에너지 마진이 줄고, 비용이 증가해 관련 손실이 늘었다고 밝혔다.
◆ 현금 넘치는데 투자 수익은 감소?.."금리 하락 영향"
버크셔 해서웨이는 이번 3분기 상장 기업 지분 투자와 단기 채권(T-Bill) 등 보유에 따른 손익을 포함한 전체 순이익은 308억 6천4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7% 증가했다. 주당 순이익(EPS)은 클래스 A 기준 2만 1천413달러, 클래스 B 기준 14.28달러를 기록했다.
투자 손익은 219억 3,900만 달러로, 전년 동기 205억 1천400만 달러 대비 소폭 증가했다. 버크셔는 3분기 동안 주식을 순매도하며 104억 달러의 과세 대상 이익을 실현했다. 올해 들어 9개월간 주식 매입은 134억 4천700만 달러에 그친 반면, 매각은 배에 가까운 240억 4천600만 달러에 달했다.
다만 버크셔의 순투자 수익은 단기 금리 하락의 영향으로 13% 감소한 32억 달러를 기록했다. 버크셔가 현재 보유 중인 3천816억 달러의 막대한 현금 상당 비중이 미국 단기 국채로 금리 하락에 취약한 역설적인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 그렉 에이블 체제 앞둔 시총 1조 기업…'버핏 프리미엄' 대체 가능할까
강력한 실적에도 버크셔 해서웨이는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번 2025회계연도 3분기까지 5분기 연속 단 한 주의 자사주도 사들이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버크셔는 지난 5월 워런 버핏 회장의 연말 최고경영자직에서 은퇴한다는 발표 이후 지금까지 고점 대비 약 12% 하락한 가격에 거래되고 있다. 버크셔 A주와 B주는 올해 들어 지난달 30일까지의 상승분은 각각 5.96%, 5.86%에 불과하다. 지난 주엔 투자은행 키프, 브루엣&우즈(KBW)는 경영 승계의 불확실성과 금리하락으로 인한 현금 보유 위험의 증가, 보험 인수 마진 우려 등을 이유로 월가 첫 '시장수익률 하회' 의견을 내 시장에 파장을 일으켰다. 커버리지를 제공하는 투자은행 6곳 가운데 한 곳만 매수, 나머지 기관들도 중립 의견을 유지 중이다.
버크셔 해서웨이 재무제표를 보면 떨어지는 주가를 막기 위한 주주환원을 미룬 대신 천문학적인 규모의 현금이 쌓인 것으로 나타난다. 버크셔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분기 말 기준 3천816억 달러(약 545조 원)로 올해 1분기 기록했던 3천477억 달러를 넘겨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3분기에 확보한 현금만 339억 달러(약 48조 원)에 달한다.
시장은 자사주 매입을 통한 주가 부양, 즉 바이백이 없다는 점에 여러 해석을 내놓고 있다. 에드워드 존스의 짐 샤나한 애널리스트는 “워런 버핏의 눈에는 지금 당장 큰 기회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CFRA 리서치의 캐시 세이퍼트 애널리스트는 “(버크셔는) 주주들에게 매우 강력한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며 "실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3분기의 미온적인 매출 성장은 투자 심리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나 버크셔 해서웨이의 운영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 것은 아니다. 올해 초 저평가 구간에 진입한 유나이티드헬스그룹에 16억 달러 규모의 지분을 취득했고, 지난달에는 옥시덴탈 페트롤리엄의 알짜 석유화학 부문 옥시케미컬(OxyChem)을 97억 달러에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버크셔가 2022년 보험사 앨러가니를 116억 달러에 인수한 이후 최대 규모의 거래로, 버핏의 후계자인 그렉 에이블 부회장이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버크셔의 사업 포트폴리오는 보험에서 철도, 에너지, 제조업, 주택,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다양해 미국 경제 건전성의 보여주는 단면을 보여주는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이번 3분기에도 시장 변동성에 올라타는 것이 아니라 우량 자회사를 편입해 안정적 현금 흐름에 집중한 것으로 풀이된다.
월가의 우려 속에서 95세의 버핏은 전설적인 60년 경력을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비보험 부문 부회장인 그렉 에이블이 CEO직을 승계한다. 버핏은 이사회 의장으로 남아 사업에 조력할 예정이지만, 내년도(2026년) 연례 서한과 주총에서 더 이상 그의 이름을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