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한국경제TV) 박지원 외신캐스터 = 간밤 미국에서 발표된 두 개의 핵심 경제지표가 시장을 뒤흔들었습니다. 끈질긴 물가 상승세에도 불구하고, 4년 만에 최악을 기록한 고용 충격이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금리 인하 기대감에 불을 지폈습니다. 그러나 시장이 환호하는 사이,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에는 '무역 갈등'이라는 또 다른 먹구름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물가 보고서의 완패"…고용 충격에 쏠린 시장
현지 시간으로 11일, 미국의 8월 소비자물가지수(CPI)는 시장의 예상보다 뜨거웠습니다. 전월 대비 0.4% 올라 올해 1월 이후 가장 큰 상승 폭을 보였고, 전년 동월 대비 상승률도 2.9%로 다시 높아졌습니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결과는 금리 인하를 기대하는 시장에 악재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정반대였습니다. 뉴욕 증시는 오히려 상승 마감했는데, 그 이유는 함께 발표된 고용 지표 때문이었습니다. 주간 신규 실업수당 청구 건수가 26만 3천 건으로 급증하며 거의 4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한 것입니다.
시장은 '끈질긴 물가'라는 악재보다 '고용 충격'이라는 훨씬 더 큰 변수에 주목했습니다. 프린시펄 자산운용의 한 전략가는 "물가 보고서가 고용 보고서에 완패했다"고 평가할 정도로, 고용 시장의 균열이 연준의 금리 인하를 압박할 가장 강력한 명분이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로써 다음 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에서의 금리 인하는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입니다. 이제 시장의 관심은 인하 '폭'으로 옮겨갔습니다. 기존에 유력했던 0.25%p 인하를 넘어, 고용 시장의 급격한 약화를 근거로 0.5%p를 인하하는 '빅컷' 가능성까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습니다. 시장은 나아가 10월과 12월에도 추가 인하가 이어져, 연말까지 세 차례 연속 금리를 내릴 가능성까지 가격에 반영하고 있습니다.
현대차 공장 가동 차질…단순 이민 문제 아니다?
한편, 미국 조지아주에 건설 중인 현대차와 LG에너지솔루션의 합작 배터리 공장 가동에는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지난주 미국 국토안보부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이민 단속을 벌이면서, 공장 가동이 최소 두세 달 지연될 전망입니다. 체포되었던 우리 근로자 대다수는 전세기를 통해 귀국했으며, 우리 정부도 '범정부적 대응'에 나섰습니다.
문제는 이번 사태가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GM과 LG의 다른 합작 공장에 파견된 한국인 근로자들에게도 귀국 요청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면서, 'K-배터리' 업계 전반으로 긴장감이 확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하워드 루트닉 미국 상무장관의 발언은 이번 사태의 배경에 의구심을 더하고 있습니다. 루트닉 장관은 CNBC 인터뷰에서 "한국과 합의는 했는데, 서류 작업을 제대로 하는지 지켜보겠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습니다. 공교롭게도 대규모 이민 단속 직후에 나온 이 발언을 두고, 미국이 무역 협상의 주도권을 잡기 위해 이번 단속을 압박 카드로 활용하는 것 아니냐는 해석에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결국 이번 사태는 단순한 이민법 집행 문제를 넘어, 양국 간의 팽팽한 무역 협상과 맞물린 복잡한 사안으로 번지는 모양새입니다. 시장의 시선이 온통 연준의 금리 결정에 쏠려있는 사이, 미국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은 또 다른 차원의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됐습니다.
박지원 외신캐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