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쏟아진 비로 아이들이 탄 통학버스가 경사로에서 꼼짝도 못했습니다. 길이 조금만 미끄러워도 통행이 힘든데 눈이 오면 어떨지 벌써부터 걱정만 됩니다." (오승근 서울다원학교 교장)
북악산 줄기를 감아 도는 서울성곽 바깥쪽에 자리한 성북동은 말 그대로 '성 북쪽의 마을'이다. 어느 시인의 작품에서는 비둘기의 빼앗긴 보금자리였고, 명망있는 재벌가들이 몰려 사는 '부촌'이자, 만해 한용운 유택, 삼청각, 간송미술관 등 걸음마다 역사가 살아있는 동네이기도 하다. 이렇게 아스라한 옛것의 공기로 가득차 골목 하나까지도 특별한 성북동에 특별한 학교가 있다.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6번 출구로 나와 초록색 지선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린다. 그러고도 가파르고 좁은 길을 오르다 보면 교문 앞에 나와 아이들을 기다리는 선생님들의 걱정스러운 얼굴이 목적지에 도착했음을 알게 한다. 바로 성북구 내 유일한 공립 특수학교, 서울다원학교 이야기다.
5일 기자와 만난 오승근 교장은 유독 궂은 날이었던 지난 1일의 기억을 끄집어내며 표정이 어두워졌다. 아침부터 소나기가 퍼붓자 길이 미끄러워지는 바람에 통학버스가 장시간 교문 앞에 묶여 있었던 까닭이다. 교직원들이 전부 나와 안전 거리를 확보하며 조심스럽게 버스의 진입을 유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오승근 교장은 "운전기사님이 40년 경력의 베테랑인데도 차량이 자꾸만 뒤로 미끄러져 하마터면 큰일 날 뻔 했다. 아이들을 미리 대피시켰지만 그 때만 생각하면 아찔하다. 아직도 바퀴가 미끄러지는 소리, 차량이 심하게 덜컹거리던 충격이 생생하다. 선생님들이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사고가 벌어지는 건 순간 아니냐"며 토로했다.
오승근 교장의 바람은 한 가지다. 학생들이 하루라도 사고 걱정 없이 등하교하는 것. 서울다원학교는 지난 1968년 개교한 사립특수학교 명수학교가 전신으로, 2015년 공립으로 전환됐다. 100명 남짓한 발달장애 아이들이 하루에 세 대의 통학버스에 나뉘어 학교를 오간다. 성북구 특성상 구릉지가 많은데다 특수학교라는 입지적 특성상 가파른 언덕 위에 학교가 위치해 매일 등하굣길이 전쟁이다. 진출입로 경사도가 심하고 도로 폭이 좁아 동절기에는 차량 운행에 더더욱 어려움을 겪는다. 다행히 학생들을 실은 버스는 사고가 없었지만 택배 차량 등이 미끄러져 위험한 상황이 벌어질 뻔한 적은 여러 번 있었다. 서울다원학교가 지난 2021년부터 성북구에 학교 앞 경사로 열선 설치를 요구했던 이유다. 오 교장은 "도로 포장 상태도 불량하고 학교 앞이라면 응당 있어야 할 속도 제한 표지판이나 붉은 페인팅도 없다. 학생들이 다니는 곳에 최소한의 안전 환경조차 조성되지 않은 건 너무하지 않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도로 열선은 도로 포장면 7cm 아래 설치된 전기 열선이 온도와 습도를 감지하는 센서를 통해 자동으로 작동된다. 갑작스러운 강설에도 신속한 대응이 가능하며, 강설 시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염화칼슘 사용량도 줄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특히 성북구는 구릉지가 많아 폭설 시 주민 통행이 불편하고, 안전사고에 대한 우려가 많아 도로 열선을 적극 구축해 왔다. 이승로 구청장이 민선 7기에 이어 8기까지 역임하며 성북구에 깔린 도로 열선은 총 58개소, 연장 길이는 1만6,386m에 이른다. 이는 서울 자치구 중 최장이다. 그러나 정작 서울다원학교가 열선 설치를 요구하자 비용 부담과 관리의 어려움을 들며 소극적인 대응을 펼치고 있다. 실제로 도로 100m 당 열선 설치 비용은 1억원이 넘고, 유지에 필요한 전기요금, 관리비 등도 계속 별도로 부담해야 한다. 겨울철 외에는 사용되지 않아 활용도도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안전을 지키고 불편을 해소하는 것은 행정의 당연한 역할이자 과제"라고 강조해 온 이 구청장의 행보를 감안하면 아쉽다는 평가가 나온다. 돌봄과 배려가 필요한 아이들에게 이렇게까지 박한 또 다른 이유가 있을까.
성북구는 학교 앞 도로 소유 관계가 복잡한 만큼 열선 설치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서울다원학교는 기존 명수학교 시절 학교 설립자 자녀 간의 재산 다툼으로 부침을 겪었다. 폐교 위기에 놓였던 학교를 서울시교육청이 공립으로 전환시켰다. 그러면서 학교 앞 도로 상당 부분이 교육청 소유가 됐다. 다원학교는 교육청 소유 부지에 대한 사용 승낙 허가를 받고, 다른 사유지 소유자들도 설득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학교 앞 도로 열선은 순탄하게 깔릴 줄 알았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해당 구간은 사유지 8필지를 포함하고 있는 도로"라며 "사유지 내 열선 등 시설물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사유 재산권 침해 등 소송 가능성이 존재하기 때문에 토지 소유주들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유지 8필지 중 2필지 소유주의 극심한 반대로 현재로선 설치가 어렵다"고 덧붙였다.
학교 측은 반대 의사 표시 필지가 언덕 하단에 위치한 만큼 상부에 부분적으로라도 열선을 설치해달라는 입장이다. 기술적으로 불가능한 사안도 아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소유주가 반대하는 구간을 제외하고 윗부분에만 열선을 시공한다든가 곡선 형태로 피해서 시공하는 방법도 있다"며 "민원 추진이 쉬운 신설 도로와 달리 기존 도로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의지가 중요해 보인다"고 귀띔했다. 성북구는 이조차 조심스럽다고 맞선다. 성북구청 관계자는 "맨홀이나 횡단하수거 등 부득이하게 지장물을 피해야 할 경우 곡선으로 열선을 설치하기도 한다"면서도 "해당 구간은 도로와 사유지 경계가 너무 가깝고, 윗부분만 열선을 설치하면 눈이 녹은 물이 흘러내려 발생한 결빙 구간이 오히려 안전사고 위험을 더 키울 수 있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상부 열선 설치 구간에서 녹아내린 물이 적설 구간에 유입되는 현상을 걱정한다면 별도의 배수 시설을 설치하면 될 일"이라고 꼬집었다.
결국 성북구는 한발 물러서 경사로에 미끄럼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포장을 다시 하고, 제설함 추가 설치와 도로 측면부 핸드레일 설치 등을 검토 중이라고 알려왔다. 하지만 어른들이 일어나지도 않은 일로 주저하는 사이 아이들은 오늘도 두려움에 떨며 비탈길을 오르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