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화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의 작품 중 영국 내셔널 갤러리가 소장한 '삼손과 델릴라'가 가짜라는 의혹이 또 제기됐다고 일간 가디언과 더타임스가 17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로 205㎝, 세로 185㎝ 크기로 1609∼1610년께 그려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그림은 구약 성경의 삼손과 델릴라 이야기를 그린 유화로, 델릴라가 삼손을 배신하는 순간을 강렬한 색채와 명암으로 담았다.
내셔널 갤러리는 1980년 크리스티 경매에서 이 작품을 250만 파운드에 구입했다. 현재 화폐 가치로 계산하면 1천만 파운드(약 185억원)를 넘는다.
그러나 이 작품을 내건 이후 위작 논란이 이어져 왔다.
그림은 1690년대 세상에서 사라졌다가 1929년에야다 다시 나타났는데, 이를 루벤스 작품으로 기록한 독일 미술사학자 루트비히 부르하르트가 상업적 목적으로 많은 작품을 잘못 기록했기 때문이다.
작품 질 자체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됐다. 붓터치가 조악하고 델릴라의 드레스 채색이 거칠며 삼손의 등 근육이 실제 인체와 다르다는 등 20세기에 만들어진 모작일 것이라는 의혹이 불거져왔다.
작품 뒷면에 현대식 합판이 덧대어져 원작품 관련 정보도 가려져 의심은 더 커졌다. 내셔널 갤러리의 1990년대 전시 도록에선 "1980년 갤러리가 구입하기 전 새로운 합판에 고정됐다"는 설명이 담겼다.
그러나 내셔널 갤러리 큐레이터 출신 크리스토퍼 브라운은 최근 가디언과 통화에서 이 그림이 진품이라고 주장하면서 그림 뒷면에 합판을 붙인 것은 내셔널 갤러리였다고 말했다.
그러다 가디언이 내셔널 갤러리에 의견을 요청한 이후 브라운 전 큐레이터는 "갤러리는 구입 전 합판이 덧대어진 것이라고 한다. 나는 그들을 믿지 않을 이유가 없다"며 입장을 번복했다.
폴란드 출신 루벤스 전문가 카타지나 크시자구르스카 피사레크는 이 작품을 위작으로 보며 "그들(미술관)은 토론을 원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답변 불가능한 논지를 펼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내셔널 갤러리 측은 "삼손과 델릴라는 오랫동안 루벤스의 걸작으로 인정받아 왔으며 진품이 아니라고 의심하는 루벤스 전문가는 단 한명도 없었다"며 의혹을 일축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