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 3년만에 처음 마주앉았지만 입장차를 재확인하는 데 그쳤다.
양측 모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방위 압박 속에 일단 협상장에 나오기는 했지만, 휴전 등 핵심 쟁점을 두고 엇갈린 입장을 고수했다.
하칸 피단 튀르키예 외무장관을 사이에 두고 17일(현지시간) 마주 앉은 양국 협상단의 실질적 결과물은 1천명씩 포로를 교환한다는 게 유일했다. 포로 교환은 양측이 정기적으로 해 왔다는 점에서 그 규모가 최대이긴 하나 새로운 진전이라고 보긴 어렵다.
그 외에는 각자의 요구 사항만 전달하는 데 그쳤다.
우크라이나 측은 무조건적인 휴전과 양국 정상 간 만남을, 러시아 측은 우크라이나 병력 철수를 통한 영토 양보를 요구한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측 수석대표인 블라디미르 메딘스키 크렘린궁 보좌관은 회담 후 "각자가 미래의 휴전 구상안에 대한 세부 사항을 제시하기로 합의했고, 그 이후 협상을 이어간다는 점에 동의했다"며 "전반적으로는 결과가 만족스럽다"고 평가했다.
우크라이나 측도 애써 포로 교환을 '중요한 성과'로 강조했다.
그러나 익명을 요구한 우크라이나의 한 외교 소식통은 AP통신에 "러시아가 오늘 회의에서 아무런 성과 없이 떠나기 위해 애초 의도적으로 실현 불가능한 문제만 내놓은 것 같이 보였다"며 비판했다.
반면 로디온 미로시니크 러시아 외무부 키이우 정권 전쟁범죄 감독 특사는 타스 통신에 "젤렌스키 대통령이 협상 대표단에 내린 지시는 처음부터 평화적 해결이 아닌 군대를 재무장하고 재편하기 위한 휴전을 찾는 데 초점을 맞췄다"고 주장했다.
양측이 비방전부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런 실망스러운 결과가 놀라운 일은 아니다.
회담 전날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측 참석자 명단을 공식 통보받진 않았지만 우리가 보는 바에 따르면 장식적인 수준에 가깝다"고 폄하했다.
러시아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휴전 압박에 못 이겨 우크라이나와 직접 대화를 전격 제안해 이날 회담이 성사된 만큼 진정성에도 의문이 제기된다.
서로를 바라보는 인식 차도 크다. 러시아는 현재의 우크라이나 정부를 적합한 협상 대상자로 보지 않는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안을 거절한 것도 그를 대화 상대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협상을 보는 관점도 다르다. 우크라이나는 평화 협상을 위해선 무조건적인 휴전이 선결돼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중립을 골자로 하는 장기적인 평화 구축 방안을 먼저 논의해야 한다고 맞서왔다.
최대 쟁점인 영토 문제를 과연 대화로 해결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러시아는 2014년 강제 병합한 크림반도를 비롯해 이번 전쟁으로 추가 점령한 루한스크, 자포리자, 도네츠크, 헤르손을 영토로 편입해야 한다고 요구한다.
우크라이나에 영토 할양은 '레드라인'이다. 국민 정서에 반하는 일이며 우크라이나 헌법상으로도 허용될 수 없는 만큼 국제적으로 인정된 국경의 완전한 복원을 주장한다.
러시아는 또 우크라이나의 비무장화 혹은 군대 축소를 요구하고 당연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도 반대한다. 우크라이나는 그러나 휴전 후 러시아의 추가 공격을 막기 위해선 유럽과 미국이 지원하는 안보 보장이 꼭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양측이 별 소득없이 이스탄불을 떠나게 되면서 이번 직접 협상을 먼저 제안한 푸틴 대통령은 이번에도 시간 끌기, 트럼프 눈치 보기용 협상이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양측은 일단 계속 대화를 이어가기로 합의했으나 구체적인 추가 협상 날짜를 정하진 않았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