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욕 증시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상호 관세 정책 발표 이후 사흘만에 낙폭을 줄였다. 그러나 각국의 보복 움직임과 미 행정부의 강경 입장이 공개되면서 시장은 불안정한 흐름을 이어갔다.
현지시간 7일 뉴욕 증권거래소(NYSE)에서 S&P500 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11.83포인트, 0.23% 내린 5,062.25로 5천선을 지켰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는 349.26포인트, 0.91% 하락한 3만 7,965.60으로 마감했으나, 장중에는 역대 최대 등락폭을 기록하는 등 변동성이 크게 확대됐다. 나스닥 종합지수는 반도체주에 대한 저가 매수 등이 유입된 영향으로 15.48포인트, 0.1% 강보합권을 기록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이스라엘 네타냐후 총리와의 백악관 회담에서 "관세 유예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며 지난 2일 공개한 상호 관세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영구적인 관세도 가능하고, 협상도 가능하다"고 언급해 조건에 따라 관세를 달리할 가능성은 열어뒀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대통령 전용기에서 열린 간이 회견에서와 마찬가지로 중국을 겨냥한 집중 견제를 이어갔다. 그는 ”중국은 사실상 폐쇄된 나라"라며 "중국이 보복 관세 34%를 철회하지 않으면, 4월 9일부터 중국 제품에 추가로 5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위협했다. 반면 일본에 대해서는 "훌륭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며, 그들도 협상팀을 보내고 있다”면서 이번 관세 부과 대상국 가운데 첫 대면 협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트럼프는 이번 고강도 관세 정책을 꺼낸 배경을 두고 “교역에서 우리가 1.9조 달러의 손실을 입는 것은 지속 불가능하고,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에 돈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나라들도 협상하러 오고 있으며, 어떤 경우에는 상당한 수준의 관세를 감수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스콧 베센트 재무장관에 따르면 이러한 협상 요청 국가는 약 70여곳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관세 정책을 두고 월가 주요 인사들의 비판도 이어졌다. JP모건 체이스의 제이미 다이먼 회장은 연례 주주서한에서 "장기적으로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오는 금요일 실적 발표에 앞서 공개된 서한에서 다이먼 회장은 "최근의 관세는 인플레이션을 높이고 경기침체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며 "관세가 경기침체를 초래할지는 아직 의문이지만, 성장을 둔화시킬 것"이라고 경고했다.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도 이날 뉴욕경제클럽 대담에서 “만나본 많은 경영자들이 현재 경기침체 상태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한 항공사 최고경영자는 항공업을 탄광 속 카나리아에 비유하며 이미 병들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고 전했다. 래리 핑크 회장은 현재 선물 시장 기준 올해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4차례의 기준금리를 인하할 가능성을 보고 있지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일축했다. 그는 오히려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금리는 더 높아질 가능성을 경계했다.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는 트럼프의 관세 정책에 대한 우려를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머스크는 자유 무역을 옹호하는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의 영상을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공유했는데, 이 영상에서 프리드먼은 연필의 생산 과정을 들어 국제 시장과 장벽 없는 무역이 어떻게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지 설명하고 있다. 머스크는 지난 주말부터 무역 고문인 피터 나바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으며, 이탈리아 극우 정당 리그의 회의에 화상으로 참석해 "미국과 유럽이 제로 관세 상황으로 이동해 사실상 자유무역지대를 만들기를 바란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공화당)도 자신의 팟캐스트에서 경제적 후폭풍은 내년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하원을 민주당에 내주고 심지어 상원까지도 잃게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지난 대선 트럼프를 지지했던 퍼싱스퀘어의 빌 애크먼 창업자도 미국이 "스스로 초래한 경제 핵겨울"로 향하고 있다고 경고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잘못된 수학에 근거한 더 큰 실수를 일으키기 전에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가운데 오는 9일 관세 발효 여부를 두고 퍼진 가짜 뉴스로 인해 시장의 혼란은 더욱 가중됐다. 이날 오전 CNBC를 통해 트럼프가 중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에 대해 90일간 관세 유예를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이 퍼졌고, 같은 문구를 소셜미디어에서 실어나르며 시장에 충격을 줬다. S&P 500 지수는 10여분 만에 3% 넘게 폭등했으나 이내 2조 달러 이상을 반납하는 급격한 변동성을 노출했다.
관세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월가의 회의적인 시각도 커지고 있다. 모건스탠리의 마이클 가펜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연준(Fed)이 즉각적으로 시장 개입에 나설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보였다. 그는 "경기침체가 오지 않는다면, 연준이 단기적으로 이 인플레이션을 무시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연준은 가까운 미래에 금리를 동결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이체방크의 브렛 라이언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더 나아가 "이것은 연준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해결책은 트럼프 행정부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골드만삭스의 데이비드 메리클 이코노미스트는 올해 미국의 경제 정책 불확실성, 무역 불확실성이 2018~2019년 미중 무역 전쟁 수준을 뛰어넘었다고 보고 이로 인해 경기 침체 확률이 45%까지 높아졌다고 밝혔다.
개별 종목 가운데 브로드컴은 주가 하락을 방어하기 위한 자사주 매입에 5.37% 상승했고, 엔비디아도 3.53% 모처럼 반등했다. 테슬라는 이날 2.56%로 추가 하락을 이어갔다. 4년간 테슬라에 대한 매수 의견을 내온 웨드부시 증권의 댄 아이브스는 목표주가를 550달러에서 315달러로 낮췄다. 댄 아이브스 애널리스트는 “테슬라가 전세계 정치적 상징물이 되면서 고객 기반을 적어도 10% 이상 잃었고, 이 마저도 보수적인 전망치”라고 설명했다.
세계 최대 기업인 애플도 중국과 인도, 베트남 등에 대한 고율의 관세 부과 여파로 이날까지 사흘 간 19% 가량 하락을 이어갔다. UBS는 애플의 아이폰16 프로맥스 기준 미국 내 가격을 약 30% 인상할 수 있다고 전망했고, 애플에 대한 매도 의견을 유지해온 바클레이스의 팀 롱 애널리스트는 “가격 인상이 없다면 연간 주당순이익이 15% 감소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