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의 실적 발표 후 고성능 AI 칩 시장 성장성에 대한 불안이 불거지고 있다.
AI 칩 수요는 탄탄했지만 딥시크의 등장, 관세와 수출 규제 리스크 등으로 작년 같은 급격한 성장이 올해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엔비디아는 최근 실적 발표에서 지난 분기(2024년 11월∼2025년 1월) 393억3천만달러(약 56조원)의 매출과 0.89달러의 주당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AI 수요 증가로 데이터센터 AI 칩 매출이 전년 대비 2배 가까이 급증해 호실적을 거뒀다.
매출과 주당 순이익 모두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었다. 이번 분기(2∼4월) 매출은 처음 400억달러를 넘어 430억달러 안팎에 이를 것으로 엔비디아는 예상했다.
그런데 실적 발표 다음 날인 지난달 27일 엔비디아 주가는 8.48% 급락했다. 이익률(총마진·GPM)이 부각된 탓이다. 다른 반도체주 주가도 줄줄이 내렸다.
엔비디아는 올해 2∼4월 이익률이 70.6%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는데 이는 전년 회계연도의 75% 총마진보다 크게 낮다.
엔비디아 측은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 공급이 확대되면 총마진이 연내 70% 중반대로 개선될 수 있다고 밝혔지만 시장 우려를 잠재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블랙웰이 고성능인 동시에 설비 투자와 생산에 큰 비용이 드는 고비용 제품이기 때문이다.
엔비디아의 이익률 하락에 대해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블랙웰 양산 비중 확대에 따른 수익성 하락"이라며 "미국 팹(공장) 양산과 높은 원가 구조라는 해결이 힘든 원인을 내포하고 있다"고 짚었다.
또 "블랙웰은 공급 제약으로 인해 수요를 전부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며 "따라서 제조 효율 증대를 위한 비용 증가로 인해 이익률이 낮아졌고, 이는 다음 분기에도 이어질 예정"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 등 불확실성이 산재한 가운데 엔비디아 수익성에 영향을 미칠 우려도 나온다.
중국산 생성형 AI 딥시크가 저비용 고효율을 내세우면서 고성능 고비용 전략인 엔비디아 AI 칩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
이 와중에 점차 GPU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으면서 올해 하반기부터는 엔비디아 성장이 둔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블랙웰 수요 강세로 외형 성장이 지속될 가시성은 크다"면서도 "제품 제조와 유통 과정에서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는 비중이 점차 커져서 관세 정책 불확실성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고 지적했다.
안소은 KB증권 연구원도 "딥시크 등장 후 초고성능 GPU 수요와 엔비디아 독점력에 대한 의구심이 생겼고,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 정부의 반도체 수출 규제 압박이 강해지는 점도 엔비디아 성장 전망을 방해하는 요소"라고 짚었다.
엔비디아 AI 칩 공급망에 속한 SK하이닉스, TSMC 등 글로벌 반도체 업체도 영향권에 속한다.
SK하이닉스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엔비디아에 공급해 지난해 최대 실적 행진을 이어왔지만 올해 1분기에는 '숨 고르기'에 들어갈 것으로 보인다.
연합인포맥스가 최근 2개월 내 발표된 증권사 실적 전망(컨센서스)을 집계한 결과, 현재 SK하이닉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전 분기보다 21.97% 감소한 6조3천68억원이다.
고객사들이 연말 재고 소진 후 주문을 줄이는 업계 비수기가 도래하는데다 전방 IT 수요 부진에 따른 레거시(범용) 메모리 출하량 감소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고부가 제품인 HBM은 올해도 고성장이 기대되지만, 지난해보다 성장률은 올해 다소 주춤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박유악 키움증권 연구원은 "SK하이닉스의 2025년 HBM 실적은 큰 폭의 성장세를 이어갈 전망"이라며 "다만 성장률 측면에서 HBM의 매출액 성장률은 지난해 분기 평균 전 분기 대비 59%에서 올해 7%로 급감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어 "생성형 AI의 스케일링 법칙(모델 크기 증가에 따른 성능 향상)이 한계에 봉착하고 있다는 우려와 함께 엔비디아의 마진 '피크아웃' 우려도 커져 있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