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의 배터리 소재 신사업이 전기차 시장 성장 둔화 여파로 사업화 지연에 직면하고 있다. 경영권 분쟁이 올 한 해 동안 이어지는 가운데 신사업의 안정적인 수익 확보 시점이 불투명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의 본격적인 동박 양산은 2024년 해를 넘기게 됐다. 주요 고객사들과의 납품 계약 체결이 지연되면서, 1년 넘게 시제품 단계에 머물고 있는 상황이다.
동박은 얇은 구리박으로 배터리 핵심 소재 중 하나인 음극재에 들어가 전류를 흐르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고려아연은 비철금속 제련업체의 강점을 살려 구리 등 제련 기술력을 활용해 동박 사업에 진출했고, 폐배터리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배터리 소재, 신재생에너지 및 그린수소, 자원재활용 등 '트로이카 드라이브'로 불리는 신사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다.
고려아연은 2020년 동박 생산과 판매를 담당할 자회사 케이잼을 설립했다. 2022년에는 약 7,000억 원을 투입해 울산 동박 공장을 완공하고 2023년부터 시제품 양산에 성공했다. 당시 업계는 이르면 2023년 말, 늦어도 2024년에는 국내 배터리사와 양산 계약을 맺고 매출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글로벌 전기차 시장 둔화(전기차 캐즘)는 고려아연에 불리하게 작용 중이다. 동박 후발주자인 고려아연은 경쟁이 심화된 동박 시장에서 수익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현재 국내 1위 동박 제조사인 SK넥실리스도 올해 3분기 기준 공장 가동률이 30% 수준에 그치는 등 동박 시장 전반이 공급 과잉과 가격 하락세로 고전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고려아연의 신사업 성과를 가늠하기 위해선 먼저 글로벌 전기차 시장의 회복과 배터리 소재 수요 증가가 뒷받침돼야 한다고 보고 있다.
동박 외 고려아연의 폐배터리 사업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북미에서 추진 중인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도 리튬 가격 하락과 시장 재평가로 착공 일정이 미뤄졌다. 현재 해당 프로젝트는 잠정 중단 상태로, 초기 계획을 재조정 중이다. 2022년 미국 폐전기 업체 이그니오를 인수해 현지 폐배터리 수급처를 확보한 고려아연은 폐배터리 재활용 공장 건설로 미국 배터리 시장을 공략할 계획이 있었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업황 흐름과 신사업의 특성상 일정이 다소 지연되는 것"이라며 "폐배터리의 경우 사업이 보류 중이고 중단된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배터리 소재 연구개발은 꾸준히 진행 중이며, 올해에는 LFP(리튬인산철) 양극재에 사용될 전구체 제조 기술 개발에도 성공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