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균에 3억원 뜯은 실장, "나도 당했다"

입력 2024-11-30 14:33


지난 25일 인천지법 411호 법정. 연녹색 수의를 입은 두 여성이 변호인들 사이에서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았다. 이들은 배우 이선균씨를 각자 협박해 3억원과 5천만원씩을 뜯은 혐의(공갈)로 기소된 유흥업소 실장 A(30·여)씨와 전직 영화배우 B(29·여)씨였다.

이들은 한때 매일 만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지만, 법정에서는 서로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A씨는 지난해 9월 이씨에게 연락해 "휴대전화가 해킹돼 협박받고 있는데 입막음용으로 돈이 필요하다"며 3억원을 뜯은 혐의로 기소됐다.

B씨는 A씨와 별도로 이씨를 협박해 5천만원을 뜯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이씨는 이들에게 모두 3억5천만원을 뜯기고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던 중 지난해 12월 숨졌다.

검사는 "피고인 A씨가 협박범의 요구를 피해자(이씨)에게 전달만 했다고 주장하지만, 유사한 방식으로 돈을 뜯은 사건에서 공갈 혐의가 유죄로 인정된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검찰이 징역 7년을 구형하자 A씨의 변호인은 최후변론에 나서 "공동 피고인인 B씨가 A씨를 가스라이팅(심리 지배)해 돈을 받아내게 했다. 과거에 많은 범죄를 저지른 B씨가 A씨를 조정하고 협박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교도소에서 알게 된 A씨와 2022년 9월부터 같은 아파트에 살며 친하게 지냈다.

A씨는 같은 날 진행된 피고인 신문에서 "마음이 맞았고 가족같이 지내면서 매일매일 만난 동생"이라며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던 사이였다"고 말했다.

그러다 B씨는 마약을 투약한 A씨의 과거와 그가 유명 연예인들과 친하게 지낸 사실까지 알게 됐다.

B씨는 A씨의 사생활 정보를 바탕으로 '해킹범' 행세를 하며 "이씨와의 관계를 폭로하겠다"며 A씨에게 1억원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A씨 앞에서는 "언니"라고 부르며 협박받는 상황에 대한 대처법까지 조언했다.

A씨는 협박범이 B씨가 아닐까 의심한 적도 있지만 확신하진 못했다. 결국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구속돼 구치소에 있으면서 뒤늦게 진실을 알게됐다.

A씨와 똑같이 징역 7년을 구형받은 B씨는 그동안 재판에서 혐의를 사실상 모두 인정했다. 그러나 A씨는 B씨의 협박을 받는 상황에서 이씨를 상대로 공갈을 친 게 아니라 자신에게 3억원을 전달한 이씨의 지인을 속여 돈을 더 받았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최후변론에서 "오빠(이씨)를 지키기 위해 돈을 협박범에게 빨리 주고 끝내고 싶었다"며 " 제가 너무 좋아하는 사람이었기에 오빠를 협박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말했다.

검사가 "돈을 받아내려고 일부러 피해자(이씨)와 통화하면서 마약 관련 내용을 언급하고 녹음한 것 아니냐"고 묻자 "아니다"라며 "협박범(B씨)이 제 휴대전화를 해킹해 모든 걸 다 안다고 생각했고 오빠를 대비시키려고 했다"고 답했다.

그는 또 "애초 협박범이 1억원을 요구했지만, B씨가 '1억원이 아니라 3억원을 이씨에게 달라고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조언해 실제로 그렇게 했다"며 "오빠에게 (돈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보낼 때도 B씨의 조언을 받았다"고 말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30일 "A씨는 자신도 피해자라고 주장하면서 B씨한테서 받은 협박을 강조해 모든 혐의를 떠넘기는 전략을 쓰는 것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신이 받은 3억원도 이씨가 아닌 이씨의 지인이 준 것이기 때문에 피해자 역시 돈을 준 이씨의 지인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라며 "검찰 공소사실은 부인하고 공소장에는 포함돼 있지 않은 다른 죄는 인정해 무죄를 받으려는 의도일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A씨와 B씨의 선고 공판은 다음 달 19일 인천지법에서 열린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