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일부 기업에서 최근 몇 년 새 오너 3세가 입사해 불과 1~2년 만에 임원이 되는 경우가 눈에 띄었다. 평직원이면 입사 후 대리가 되기에도 부족한 시간에 기업의 핵심 요직에 오른 것이다.
근래 가장 눈에 띄는 사례는 오리온 3세인 담서원 상무다.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과 오너2세 이화경 부회장 부부의 장남인 담 상무는 1989년생으로 오리온 입사 후 1년 만도 지나지 않아 임원에 올랐다.
그는 2021년 7월 오리온 경영지원팀 수석부장으로 입사해 1년 5개월 만인 이듬해 12월 경영관리담당 상무로 승진했다.
올해 35세인 담 상무는 10대 시절부터 재계의 미성년 주식 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았다. 담 상무는 지주사 오리온홀딩스 지분 1.22%와 2018년 증여받은 오리온 지분 1.23%도 갖고 있다.
'불닭'으로 해외 시장에서 히트를 친 삼양라운드스퀘어(옛 삼양식품그룹)의 오너가 3세인 전병우 전략기획본부장(CSO)은 지난 2020년 20대의 나이에 임원이 됐다. 그는 김정수 부회장의 장남으로 1994년생이다.
그는 지난 2019년 25세에 삼양식품 해외사업본부 부장으로 입사했고 1년 만에 이사로 승진해 임원이 됐다. 당시 부친인 전인장 전 삼양식품 회장이 횡령 혐의로 경영에서 물러나 그가 예상보다 일찍 경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서른살인 전 본부장은 입사 4년여 만인 지난해 10월 상무로 승진했다. 삼양라운드스퀘어는 지난해 이사 직급을 폐지하고 상무보 직급을 신설했다.
매일유업 오너 3세인 김정완 회장의 장남 김오영씨는 2021년 10월 매일유업 생산물류 혁신담당 임원(상무)으로 입사해 2년 6개월 만인 지난 4월 전무로 승진했다. 김 전무는 1986년생으로 매일홀딩스와 매일유업 지분을 0.01%씩 갖고 있다.
삼양그룹 김윤 회장의 장남인 김건호 삼양홀딩스 사장은 지난해 말 사장에 선임돼 '오너 4세' 경영에 돌입했다. 1983년생인 김 사장은 지난 2014년 삼양사에 입사해 10년 만에 사장에 올랐다.
농심 오너 3세인 신동원 회장의 장남 신상열 미래사업실장은 지난 25일 인사에서 전무로 승진했다. 1993년생인 신 전무는 2019년 사원으로 정식 입사해 지난 2022년 2년 10개월 만에 구매담당 상무로 승진했다.
오뚜기는 함영준 회장의 아들인 함윤식(33)씨와 딸 함연지(32)씨가 모두 회사에서 일하고 있지만 두 자녀는 아직 임원이 아니다.
오너가 3세인 함윤식씨는 지난 2021년 오뚜기에 사원으로 입사해 현재 경영관리 부문 차장으로 재직하고 있다. 함연지씨는 올해 초 오뚜기 미국법인인 오뚜기아메리카에서 인턴으로 일하다 지난 5월부터 오뚜기아메리카에 입사해 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오뚜기의 최대주주는 함 회장(25.07%)이고 윤식, 연지씨가 각각 2.79%, 1.07%를 보유하고 있다.
대기업그룹에서는 오너일가 자녀가 입사해도 능력을 입증할 성과를 쌓거나 수년간 경영 수업을 받는 사례가 많다. 그러나 식품그룹처럼 재계 10위권 밖의 그룹 오너 자녀들은 상대적으로 세간의 관심을 덜 받아 이렇다할 검증 절차 없이 초고속 승진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식품업계 관계자는 오너 가족의 고속 승진에 대해 "3세가 책임감 있게 한 파트를 맡으려면 그에 맞는 위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위평량 위평량경제사회연구소장은 연합뉴스에 "오너가 3, 4세의 경영 능력이 뛰어나다면 문제 될 것이 없지만, 입사한 지 2∼3년 안에 능력을 인정받아 임원직으로 승진하는 것은 비현실적이다"며 "기업 내에서 자리를 두고 다른 사람과 경쟁시키고, 능력을 검증하는 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부 교수는 "젊은 자녀나 경험이 일천하고 검증되지 않은 사람이 기업 경영을 하는 경우에 기업 전체 지속 가능성에 빨간불이 켜진다"며 "자손이라도 경영 능력이 입증되지 않은 사람은 쓰지 않는다는 독일 머크사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