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소비자들의 오랜 숙원이었던 예금자보호법 개정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2002년 이후 22년 동안 5,000만원으로 동결됐던 예금보호한도는 이르면 내년이면 1억원으로 인상된다.
이 변화를 두고 금융권에선 은행권과 저축은행권의 '주판 굴리기'가 한창이다. 아직 결정되지 않은 한도 인상의 세부적인 방식과 규칙이 정립되는 과정에서 수혜 산업과 피해 산업의 위치가 뒤바뀔 수 있다는 관측이다.
15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11월 정기국회 중으로 정무위원회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 등 절차를 거쳐 예금보호한도를 1억원으로 인상하기로 합의했다.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과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지난 13일 회동 후 "양당이 수용 가능한 법안과 일부 수용 가능한 법안 목록을 서로 공유하고 정리했고, 특히 공통적으로 수용이 가능한 예금자보호법 등 6개 법안은 우선적으로 처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여야가 1억원 인상이라는 대원칙에는 합의했지만, 중요 쟁점들은 아직 정리가 필요하다. 최우선적으로 거론되는 쟁점은 업종별 차등화 여부다. 현재 은행과 저축은행, 보험, 증권 등 각 업종의 예금자보호대상에 속하는 상품은 이자와 원금을 포함해 총 5,000만원까지 보호한다.
금융권에서는 은행업계를 중심으로 모든 업종의 한도를 1억원으로 인상하면 더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저축은행으로 대규모 '머니무브'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낮은 이율에도 저축은행이 아닌 은행에 예금을 맡기는 소비자들 입장에선 저축은행의 위험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2022년 국회에 제출한 연구용역 자료에 따르면 보호한도를 전 업종 1억원으로 인상할 경우 저축은행의 예금은 최대 40% 증가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됐다. 지난 8월 기준 저축은행의 수신 규모는 100조9,568억원으로 집계됐다. 이중 대부분이 은행권에서 이탈한 자금이라는 가정을 하면 최대 40조원의 수신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소수의 금융소비자들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공공이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는 '모럴 해저드' 우려를 고려해 업권별로 한도를 다르게 하자는 의견도 있다. 입법조사처가 이 같은 의견을 제시한 가운데, 예보는 금융소비자 혼란을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만약 법안 개정 과정에서 업권별 차등화 조항이 실제로 통과된다면, 저축은행권에선 "반대급부로 예보료율 조정을 반드시 관철해야 한다"는 전략이 거론된다. 현행법에 따라 금융기관들은 산업별로 총수신의 일정 비율을 예보에 보험료로 지불한다. 현재는 은행 0.08%, 보험 0.15%, 증권 0.15%, 상호금융 0.2%, 저축은행 0.4%로 반영되고 있다.
저축은행권은 은행과 동일한 예금에 대해 5배가 많은 보험료를 지불하는 상황에 불만을 품고 있다. 한 국회 정무위 보좌관은 "업권별 예보료율은 시행령을 통해 지정되고 있는 만큼 법안보단 수월한 수정이 가능하다"며 "예보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당국과 업계 양측과 소통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예금자보호법이 어떤 방식으로 개정되더라도 시행은 내년 이후로 미뤄질 전망이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이 지난 국정감사에서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한도 인상은 자금의 급격한 이동이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관계기관과 협의 중에 있다"고 말했다. 유재훈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지난해 "2027년 이후 인상을 논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