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예산안 시정연설을 시작으로 677조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심사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11년만에 현직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으로 예산 정국은 시작부터 얼어붙은 모습이다.
특히 여야가 각각 '김건희표', '이재명표' 예산을 삭감하겠다고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데다, 야당에선 예산안 부수법안 자동부의제도 폐지까지 추진하고 있어 역대급 예산안 늑장 처리가 예고되고 있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4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약 677조4천억원 규모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 관련 윤석열 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대독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때부터 대통령이 매년 시정연설에 나섰는데, 올해는 윤 대통령이 불참했다.
윤 대통령의 시정연설 불참으로 여야간 날선 대립이 이어지면서 내년 예산안 심사는 시작부터 진통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여야는 오는 7~8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예산 심사 방향을 놓고 날선 신경전을 펼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은 대통령의 민생토론회 관련 예산과 김건희 여사 관련 예산을 1순위 삭감 대상으로 지목한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올해 들어 지역 순회 민생토론회를 통해 각종 정책과제 추진 방침을 밝혔는데 민주당은 이를 선심성 사업으로 규정했다.
또 7,900억원이 편성된 '마음 건강 지원사업'과 3,500억원이 책정된 '개 식용 금지 관련 예산'을 '김건희표 예산'으로 규정하며 전액 삭감을 예고하고 있다.
이렇게 줄인 예산은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표 정책인 지역화폐 발행과 에너지 고속도로 기반 확충을 위한 예산을 늘리고 고교 무상교육 국비 지원 예산을 복원하는 데 활용하겠다는 구상이다.
여기에 맞서 국민의힘은 '긴축 기조'의 내년도 정부 예산안을 사수하며 '이재명표 예산'의 증액은 차단하겠다는 방침이다.
앞서 김상훈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은 지역화폐에 대해 "실제 경기 부양 효과를 찾아보기 어려운 전형적인 포퓰리즘 사업"이라며 반대입장을 뚜렷이 했다.
여야 대립이 심해지면서 올해 예산안 처리도 법정 시한(12월 2일)을 넘길 가능성이 큰 가운데, 정부의 세입 예산안 부수 법안 자동 부의에 제동을 건 '국회법 개정안'도 뇌관으로 떠오른 상황이다.
국회는 지난 2014년 예산안 지각처리를 막기 위한 국회선진화법의 일환으로 11월 30일까지 여야가 예산안 심사를 마치지 못하면 국회 본회의에 정부가 제출한 예산안 원안과 예산안과 관련된 세법 개정안 등 부수 법안이 자동 부의되는 제도를 도입했다.
헌법상 국회는 내년 회계 시작일 30일 전인 12월 2일까지 예산안 처리를 마쳐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2013년도, 2014년도 예산안은 해를 넘겨 1월 1일에 겨우 처리하는 등 예산을 둘러싼 연말 줄다리기가 일상화되면서 준예산 편성 위기가 반복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달 31일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예산안 자동부의 폐지법안이 야당 단독으로 의결되면서 예산안·세법개정안 심의가 역대급으로 지연될 공산도 커졌다.
일각에서는 예산안을 둘러싼 여야 정쟁에 내년 1월 1일까지 예산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면서 정부가 전년도 예산에 준해 편성하는 '준예산안'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다만 국회법 개정안 통과에도 실제 자동부의 폐지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여당은 국회선진화법의 여야 합의 정신을 정면으로 위배했다며 윤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거부)권 행사를 건의한다는 입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