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7대 美 대통령 탄생…우리는 어떤 방향을 모색할 것인가? [국제경제읽기 한상춘]

입력 2024-11-04 07:44


최근처럼 세계 경제가 흔들릴 때마다 질서를 잡아줘야 할 국가의 통수권자일수록 수난을 겪고 있다. 선진 7개국(G7) 중 영국의 리시 수낙 총리와 일본의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교체됐다. 조만간 조 바이든 대통령도 물러난다. 프랑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과 독일의 올라프 슐츠 총리의 위상은 종전만 못하다. 사회주의 국가의 양대 축(S2)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의 블라미드르 푸틴 대통령도 각국 경기 부진과 장기간 전쟁에 따른 국력 소모로 흔들리고 있다.

G7과 S2 통수권자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함에 따라 세계경제질서가 ‘그룹 제로(G0)’로 가는 시대에서는 국제 공동의 이익보다 자국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고려될 수밖에 없다. G7과 S2 통수권자의 역할이 가장 절실한 각국 간 전쟁부터 장기화되고 있다. 내년 3월이면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3년이 된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전쟁도 1년이 넘었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무역기구(WTO), 세계은행(World Bank) 등과 같은 국제다자기구의 위상과 합의 사항에 대한 이행력이 떨어지고, 합의 사항 위반 때 제재하더라도 이것을 지키려고 하는 회원국이 많지 않다. 이 때문에 재원 조달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음에 따라 ‘국제기구 축소론’과 ‘역할 재조정론’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의 47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2025년에 예상되는 세계경제질서는 미국과 중국이 경제 패권을 놓고 대립하는 '신냉전 2.0', 미국과 중국이 상호 공존하는 ‘차이메리카’, 지역 혹은 국가별로 분화하는 ‘분권화’, 모두 조화하는 ’다자주의’, 무정부 상태인 ‘서브 제로(sub zero)’ 등의 다섯 가지 시나리오로 상정해 볼 수 있다.

가장 확률이 높은 것은 미국과 중국 간 이해관계에 따라 ‘차이메리카’와 ‘신냉전 2.0’이 반복되는 커다란 줄기 속에 다른 국가는 자국 문제 해결에 더 우선순위를 두는 중층적 ‘분권화’ 시나리오다. 이 경우 세계경제질서는 G7국가가 주도가 돼 구축해 놓은 글로벌스탠더드가 통하지 않으면서 미래 예측까지 어려운 ‘뉴 앱노멀 젤리형’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뉴 앱노멀 젤리형 세계경제질서는 종전의 스탠더드와 거버넌스에 내재돼 왔던 한계에서 비롯된다. 2차 대전 이후 스탠더드와 지배구조를 주도해 왔던 미국과 유럽에서 각각 금융위기와 재정위기가 발생했고, 각국이 동시다발적으로 직면한 코로나 사태에도 가장 많은 피해를 받음에 따라 주도국으로서의 위상과 신뢰가 급격히 떨어졌다.

G0 시대에서는 어느 국가가 지속적으로 성장해 경제발전단계를 높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뉴밀레니엄 시대 이후 G7 이외 새로운 중심국으로 부각될 것으로 기대됐던 브릭스 국가가 공통적으로 갖고 있었던 인구와 부존자원 이외 다른 성장 동인이 있어야 주도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는 것이 로스토우(W. W. Rostow) 교수가 주장했던 ‘제2의 도약론’이다.

새롭게 거론되는 성장 동인 가운데 하루가 다르게 디지털 콘택츠가 변화되는 초연결 사회에서는 ‘중심축 국가(pivot state)’일수록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심축 국가란 특정 국가에 의존하기보다 다양한 국가와 서로 이익이 될 수 있는 관계를 독자적으로 구축할 수 있는 국가를 말한다.

디지털 콘택트 초연결 시대에서는 미?중 간 마찰은 ‘디지털 통화전쟁’ 쪽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미국보다 앞서 도입해 법정통화 단계까지 끌어올린 중국은 미국의 신정부가 들어오는 2025년부터 디지털 위안화를 일대일로(一帶一路),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등을 주축으로 국제위상을 높이는 노력을 본격적으로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를 기축통화로 구축할 경우 글로벌 화폐발행차익을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국제금융시장에서 자국 금융사의 자금조달 효율성과 편리성을 도모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글로벌화가 급진전되기 시작한 1990년 이후 미국은 글로벌 화폐발행차익을 연간 23∼118억 달러로, 전체 조세수입의 0.4∼1.8%에 달하는 큰 혜택을 누려왔다.

민간 권력이 국가 권력까지 넘보는 것을 견제할 목적으로 페이스북의 리브라 발행을 불허하는 도널드 트럼프 직전 정부의 방침에 따라 유보적인 입장을 취했던 미국도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양대 경제수장인 재닛 옐런 재무장관과 제롬 파월 Fed 의장이 잇달아 ‘디지털 달러화’ 도입 방침을 밝혔다. 더 늦출 수 없는 국면에 몰렸기 때문이다.

미국 국민의 화폐 생활도 빠르게 변하면서 현금 없는 사회가 닥치고 있다. 오히려 공식화폐인 법화(法貨·legal tender)를 갖고 있으면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은 “바보다”라고 조롱할 만큼 ‘현금의 저주’ 단계까지 이르고 있다. 현금의 저주란 5년 전 케네스 로코프 하버드대 교수가 쓴 '화폐의 종말'에서 처음 주장해 충격을 줬던 용어다.

대외적으로는 현실로 닥치고 있는 ‘트리핀 딜레마’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세계 교역 증가세에 맞춰 달러화를 계속 공급해야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달러 가치 하락으로 기축통화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벨기에 경제학자인 로버트 트리핀의 주장이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더이상 달러 패권을 누리지 못하게 되면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는 2차 대전 이후 브레튼우즈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부담했던 달러화 보유 구속. 즉 ‘달러 함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이 경우 보유 달러화가 대거 출회되면서 달러 가치가 추가적으로 떨어지는 악순환 국면에 몰릴 수 있다.

Fed가 달러 가치를 유기하기 위해 가장 간단하고 손쉬운 방법은 풀린 달러화를 환수하는 출구전략이다. 하지만 2015년 12월 금리인상 이후 추진됐던 출구전략 추진 과정에서 입증됐듯이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 미국 학계를 중심으로 달러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화폐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논의되는 화폐개혁 방안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가장 선했던 ‘금본위제 부활’이다. Fed가 달러화 공급 계획이 발표될 때마다 금값이 올랐던 것도 이 요인이 한몫했다. 하지만 절대적인 금 공급량 제한과 금 보유국에게 또 다른 특혜가 집중된다는 점에서 실행에 옮기기는 사실상 어렵다.

다른 하나는 디지털 위안화 조기 정착을 계기로 ‘디지털 달러화’ 도입을 앞당기는 방안이다. Fed는 디지털 통화 시대가 닥칠 것에 대비해 오래전부터 대책반을 구성해 준비해 왔다. 현재 통용되는 달러화와 별도로 ‘디지털 달러화’를 언제든지 발행해 실행에 옮길 수 있는 단계까지 와있다는 평가다.

2025년에 미국의 신정부가 들어서면 디지털 위안화와 디지털 달러화 간에 또 다른 형태의 기축통화 전쟁이 앞당겨질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양국 간 다툼은 우리 경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중간자 입장에 서 있는 우리로서는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면 불리해지는 만큼 미국 편향인 대외정책상 우선순위를 조정해 하루빨리 균형을 찾아 놓아야 한다.

47대 미국의 신정부 들어 새로운 전개될 미국과 중국 간 마찰 시대에 어떻게 관계를 설정하느냐에 따라 한국 경제의 앞날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중심축 사회에서 더 거세질 양국의 네트워크 가담 요구에 어느 편에 설 것인가’와 ‘앞으로 전개될 디지털 통화전쟁에 디지털 원화의 위상을 어떻게 찾아갈 것인가’ 만큼 중요한 과제가 없기 때문이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