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국왕, 수해현장서 진흙세례 '봉변'

입력 2024-11-04 06:25
수정 2024-11-04 07:25


최근 쏟아진 폭우로 역대 최악의 수해를 입은 스페인에서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과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대홍수 피해 현장을 찾았다가 분노한 수재민들에게 욕설을 듣고 진흙을 맞는 '봉변'을 당했다.

펠리페 6세는 이번 수해로 최소 62명 사망자가 나온 발렌시아주 파이포르타를 레티시아 왕비, 산체스 총리, 카를로스 마손 발렌시아 주지사와 함께 방문했다고 로이터, AFP, EFE 통신 등이 보도했다.

분노한 주민들은 피해 지역을 걷던 펠리페 6세와 산체스 총리 일행을 에워싸더니 진흙과 오물을 집어 던지며 "살인자들", "수치", "꺼지라"고 욕설했다.

온라인에 올라온 한 영상에서는 한 청년이 국왕을 향해 국가의 이번 수해 대응이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외쳤고, 마손 주지사의 사임을 요구하거나 "산체스 총리는 어딨느냐"고 외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경호원들이 급히 우산을 씌웠지만 펠리페 6세와 레티시아 왕비는 얼굴과 옷에 고스란히 진흙을 맞는 수모를 겪었다.

펠리페 6세는 다른 일행보다 더 오래 머물며 주민들을 위로하려 했지만 결국 서둘러 방문을 종료했다고 AFP 등은 전했다. 다른 수해 지역 방문도 취소됐다.

보통 스페인 국민들은 왕실에 대한 예의를 지키는 편이라 국왕을 향해 물체를 던지거나 욕설을 퍼붓는 일은 아주 드물다고 한다.

펠리페 6세는 이후 소셜미디어에 올린 영상에서 "피해 주민들의 분노와 좌절을 이해해야 한다"며 "피해자들에게 국가가 온전하다는 희망과 보장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스페인 방송 RTVE는 이날 군중이 던진 물체에는 돌과 딱딱한 물체가 섞여 있어 경호원 두 명이 다쳐 치료를 받았다고 보도했다. 또한 산체스 총리의 차량 창문도 깨진 것으로 전해졌다.

산체스 총리는 이후 수해 주민들의 고뇌와 고통에 공감한다면서도 "모든 종류의 폭력"을 규탄한다고 말했다.

국민들이 이처럼 격하게 국왕과 정부에 분노한 것은 이번 수해가 당국의 안이한 대응 탓이라고 여겨서다.

스페인에서는 지난달 29일 쏟아진 기습 폭우로 인해 최소 217명이 사망했고 수십 명의 소재가 아직도 파악되지 않았다. 약 3천 가구가 단전을 겪고 있다.

스페인 기상청이 폭우 '적색경보'를 발령했지만 지역 주민에게 긴급 재난 안전문자가 발송되기까지는 10시간 넘게 걸리는 등 당국의 부족한 대응이 인명피해를 키웠고 이후 수색과 복구 작업도 느리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온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