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려고 무인점포 차렸나"...선 넘은 '합의금 장사'

입력 2024-11-02 07:57


최근 무인점포에 "훔쳐갈 시 100배 변상"이라는 경고문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절도 사건이 많아 엄포를 놓으려는 의도로 보이지만, 관련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관들은 다른 의도가 숨어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 범죄가 일어났을 때 물건값에 비해 과도하게 큰 합의금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심지어 업주 한 명이 여러 개의 무인점포를 운영하며 고액의 합의금을 상습적으로 챙기더라는 게 일선 경찰관들의 설명이다.

경기 남부지역 한 경찰서 형사과에서 근무하는 A 경감은 "어린 학생이 무인점포에서 아이스크림을 한 개 훔치자, 업주가 부모에게 200만∼300만원의 합의금을 받아내는 사례들이 있었다"며 "피해자가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은 상식적이지만, 지나치게 큰 금액을 부르는 일이 계속되니 문제"라고 말했다.

지난 6월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한 무인점포에 내걸린 '최근 변상 및 고발 사례'라는 안내문 사진이 올라왔는데, 여기에 "초등학생: 합의금 100만원, 학교 통보", "중학생 및 성인: 합의금 200만원, 형사 고발 조치", "성인: 학교 및 직장 통보, 형사 고발 조치, 합의금 300만원" 등이라고 적혀 있어 마치 '합의금 장사'처럼 보인다는 논란이 일었다.

다른 온라인 커뮤니티에도 "자제력이 부족한 어린애들이 저지른 일을 두고 저러는 건 옳지 않다", "절도범이 잘못한 게 맞지만, 최소한의 방범 장치도 달지 않고서는 경찰력을 동원해 합의금을 타내는 건 또 다른 문제"라는 반응이 잇따랐다.

일부 업주가 '합의금 장사'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과도한 금액을 부르는 것은 수사기관이 처벌 수위를 정하는 데 있어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가 중요한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소액의 물건을 훔치는 등 경미한 범죄(20만원 이하의 벌금, 구료, 과료에 처하는 사건)를 저지르면 성인은 '경미범죄심사위원회'에, 촉법소년이 아닌 미성년자는 '선도심사위원회'에 회부된다.

두 위원회는 죄질이 경미하거나 피의자가 사회적 약자인 경우 심사를 통해 처분을 감경해준다. 이 심사 결과에 따라 형사 입건된 피의자 신분이면 전과가 남지 않는 약식재판인 즉결심판에 넘겨지고, 입건 전이면 훈방 조처되는 방식으로 감경받을 수 있다.

그런데 경찰은 두 위원회에 회부할 대상자를 정하며 피해자와의 합의 여부를 중요하게 고려한다. 선도심사위원회에서 훈방 대상자를 정할 때도 합의 등을 토대로 한 피해자의 처벌 불원 의사가 중요하다.

사정을 아는 일부 업주들이 상대방에게 이런 내용을 말하며 과도한 액수를 부른다는 것이다.

무리한 합의금 요구 행태에 대해 경찰이 이를 직접적으로 제재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한 경찰 관계자는 "검찰은 '형사조정위원회'를 열어 양측 간 합의금 책정 과정에 개입할 수 있지만, 경찰에게는 관련 권한이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무리한 합의금 요구 행태에 제동을 걸고 각 무인점포의 방범 체계 개선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이윤호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는 "공신력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 합의금 조정 기구를 마련해 당사자들이 자문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지나친 합의금 요구 등 정황이 파악될 경우 경찰 수사 단계에서도 일정 수준 개입할 수 있도록 관련 제도를 정비할 필요도 있다"고 했다.

이 교수는 "무인점포 업주들도 입장객 신원 확인 장치 및 자동경비시스템 설치 등 방범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한다"며 "국가 차원에서도 이를 장려하기 위한 방안을 고민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