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 시중은행과 금융지주들이 다음달 예정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 개정안 시범운영에 맞춰 책무구조도를 금융당국에 제출했다. 내년부터 본격 실시되는 책무구조도는 금융사고 발생시 금융사 임원의 책임소재 확인 및 징계의 근거로 사용될 수 있어 '금융판 중대재해처벌법'이라 불리는 제도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5대 금융지주 가운데 신한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는 지난 28일 금융당국에 지주 및 주요 계열사들의 책무구조도를 제출했다. 일정 조건을 충족한 금융사의 책무구조도 제출을 의무화하는 지배구조법 개정안은 내년 1월 2일부터 시행되지만, 당국에선 이번달 31일까지 조기제출한 금융사들을 대상으로 다음달 시범 운영에 나선다.
아직 책무구조도를 내지 않은 KB금융지주와 NH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역시 이번주 목요일(31일)까지 이사회 의결을 거쳐 완료하겠다는 입장이다. 올해 시중은행 전환을 마친 iM뱅크와 모기업 DGB금융지주 역시 제출 절차를 마무리한 상태다.
한 금융지주 관계자는 "당국에서 책무구조도를 조기제출한 금융사엔 시범운영 기간에 임직원의 법령 위반을 자체 적발 및 시정하면 제재를 감경 또는 면제하겠다고 안내했다"며 "당국의 의지가 강한 만큼 대다수 금융사가 시범 운영에 참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책무구조도는 지난해말 개정된 지배구조법에 따라 각 금융사 임원의 명단과 각자의 직책별 책무를 담고 있는 문서다. 구체적으로 법령 준수, 건전 경영, 소비자 보호 등 내부통제 핵심 분야의 담당 임원을 지정하고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들에게 책임이 있음을 명시하고 있다.
책무구조도는 '2019년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불완전판매 사태'를 거치며 도입이 됐다. 2019년 당시 일부 시중은행들은 독일 국채 금리를 기반으로 한 DLF를 판매했다가 기초자산의 가격이 요동치며 많은 고객들이 대규모 손실을 봤다. 이 과정에서 많은 소비자들이 상품 판매 과정에서 충분한 설명을 제공받지 못하는 등 불완전 판매가 진행됐다는 점이 확인됐다.
금융당국은 당시 각각 우리은행장, 하나은행장을 맡았던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과 함영주 하나금융그룹 회장이 내부통제 제도를 제대로 운용하지 못한 책임이 있다며 징계를 내렸다. 하지만 두 사람은 당국의 반대에도 회장 취임에 성공했고, 법원에서 펼쳐진 징계 취소소송에서도 승리했다.
당시 법원은 CEO가 내부통제 관련 제도를 마련할 책임이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실제로 사고가 일어났을 때 임직원이 내부통제 기준을 준수하지 않은 책임을 온전히 물릴 수 없다고 판단했다.
책무구조도는 이처럼 과거엔 명확하지 않았던 금융사고 발생 이후의 책임 소재를 특정 임원에게 확고히 물도록 하겠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다만 금융권에선 얼굴도 모르는 지점 직원의 일탈을 두고 금융사 임원을 처벌하는 과도한 규제라는 반발도 나온다.
21대 국회 당시 지배구조법 개정안 심사에 참여한 한 국회 정무위원회 관계자는 "수백, 수천억원의 고객 재산 피해가 발생해도 금융사 임원들이 자리를 지키고 오히려 영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는 취지"라며 "다만 일방적으로 책임만 물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내부통제 시스템이 작동하도록 노력했다는 근거가 있으면 사고 발생 후에 책임을 감경하는 '당근' 조항도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