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아이와 함께 가족 여행을 다녀오는 척 필리핀에서 입국한 남성의 배낭에서 30만명 투약 분량의 마약류가 발견됐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29일 마약류를 국내로 밀반입한 A(33)씨와 이를 국내에 유통한 B(45)씨 등 2명, 운반책(속칭 드라퍼) C(21)씨 등 4명을 최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향정·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구속 송치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 6월부터 지난달까지 필로폰 6.643㎏, 케타민 803g 등 마약류를 네 차례에 걸쳐 필리핀에서 국내로 밀반입하고 일부를 유통한 혐의를 받는다.
이들이 들여온 마약류는 시가 약 35억원 상당으로 30만여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이다. 경찰은 유통되지 않은 필로폰 3.18㎏과 케타민 803g(14만명 투약분·18억원 상당)을 압수했다.
A씨는 아내와 7세·8세인 두 아이와 함께 여행객인 것처럼 필리핀으로 출국했다가 현지 호텔 앞에서 마약이 담긴 배낭을 전달받고 국내에 들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배낭 안쪽 천을 잘라 필로폰을 펼쳐 넣고 다시 봉제한 뒤 그 위에 망고칩 등을 넣는 수법으로 필리핀 공항의 엑스레이 검사에 걸리지 않았다.
인천공항 입국 때는 전수 검사가 아닌 선택적 검사를 한다. 그는 아이와 손을 잡고 배낭을 멘 채 들어와 평범한 가족 여행객처럼 보여 세관 당국의 의심을 피했다.
A씨가 경북 경주 한 야산에 숨겨둔 배낭을 B씨 등 유통책이 찾아 이를 1g씩 소분하고 절연 테이프로 개별 포장해 경기 수원의 한 공원 땅속에 묻었다.
C씨가 이를 찾아내 서울·경기·충청 등 지역 주택가 소화기, 분전함, 보일러 등에 숨겨놓고 찾아가게 하는 '던지기 수법'으로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은 '고액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범행에 가담한 것으로 드러났다. 서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텔레그램 대화방에서 총책의 지시만 받고 역할을 분담해 전국에서 마약류를 유통했다.
이들로부터 필로폰을 사서 투약한 서울 강남의 한 유흥업소 20대 여성 접객원도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경찰은 지난달 이 여성의 자수를 단초로 수사를 확대해 A씨 등을 차례로 검거했다.
경찰은 범행을 주도한 총책 등 윗선과 나머지 운반책, 매수·투약자를 쫓고 범죄 수익금이 흘러간 경로도 추적 중이다.
경찰은 A씨 가족의 필리핀 체류 비용을 총책이 전부 내준 점 등을 토대로 A씨의 아내도 범행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A씨의 집에서는 주식 리딩방 범죄에 활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중계기도 발견됐다. 이에 부부는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도 입건됐다.
박원식 강남서 형사2과장은 "가족여행을 가장해 해외로 나가 마약류를 국내에 들여오고 유통한 범행이 발각된 것은 처음"이라며 "이런 수사 내용을 인천 공항 세관에도 통보했다"고 설명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