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 좇던 이커머스, 챗GPT 좇는 네이버·카카오

입력 2024-10-23 17:31
수정 2024-10-23 18:06
<앵커>

어제 카카오가 자체 AI 서비스인 카나나를 공개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미지근합니다.

국내 테크기업들이 처한 AI 경쟁 상황이 그만큼 녹록치 않은 셈인데, 수익화 모델이 뚜렷하지 않을 경우 과도한 출혈경쟁으로 이어질 거란 우려도 나옵니다.

이 내용 산업부 전효성 기자와 함께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전 기자, 테크·통신사들의 AI 서비스가 어느정도 진용을 갖춘 모습입니다.

<기자>

네이버는 클로바X, 카카오 카나나, SK텔레콤 에이닷, LGU+는 익시오를 공개했습니다. 현재 일반 이용자가 사용할 수 있는 건 클로바X와 에이닷이고요.

지금까지 공개된 국산 AI 솔루션은 챗GPT처럼 대화형 AI 서비스입니다. 질문을 하면 답을 하는 방식이죠.

기존 통신, 검색, 메신저와 결합해 시너지를 내겠다는 구상이지만, 이미 대화형 AI 주도권을 장악한 빅테크를 상대로 강한 인상을 남기긴 쉽지 않은 상황입니다.

<앵커>

챗GPT라는 선두를 뒤쫓는 후발주자가 난립하는 모습인데, 이같은 경쟁상황을 몇년 전 겪어본 것 같습니다. 이커머스를 장악한 쿠팡이 떠오르는데요.

<기자>

업역은 다르지만 기시감이 듭니다. 쿠팡이 새벽배송을 앞세워 유통망을 장악하자 기존 유통 공룡인 신세계와 롯데가 도전에 나섰습니다.

신세계는 SSG닷컴을 론칭했고 3조원 넘게 들여 G마켓도 인수했습니다. 롯데는 롯데온을 출범시켰고, 티몬·위메프도 각광을 받았죠. 하지만 수년이 지나서 유통망을 장악한 건 쿠팡입니다. 온·오프라인 모두를 잡겠다고 도전한 유통 공룡이 패배한 셈이죠.

이때 돋보인 게 현대백화점입니다. 경쟁사들이 공격적인 이커머스 경쟁에 나서는 동안 현대백화점은 큰 액션을 취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공들인 오프라인 백화점 '더현대서울'을 선보였고 젊은층 사이에서 가장 핫한 곳이 됐죠.

신사업 진출과 본업 경쟁력 강화 중 후자를 극대화한 결과입니다. 챗GPT를 뒤쫓는 테크 기업들이 쿠팡을 뒤쫓던 유통 기업들의 사례를 떠올려봐야할 이유이기도 합니다.

<앵커>

결국 AI 서비스를 내놓는 것도 중요하지만 본업 경쟁력이 핵심이라는 얘기인데요 현재 테크기업들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기자>

네이버와 카카오톡, 메인 플랫폼에서의 이탈 조짐이 심상치 않습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앱 체류 시간을 빼앗기고 있는 건데요. 지난해 한국인은 월 평균 유튜브 앱을 998억분, 인스타그램을 158억분 이용했습니다.

올해 8월 자료를 살펴보니 유튜브는 1178억분으로 8개월만에 12.9% 늘었고, 인스타그램은 245억분으로 증가율이 55%에 달했습니다. 반면 카카오톡은 327억분으로 같은 기간 이용 시간이 4% 가까이 줄었고, 네이버는 218억분으로 3.5% 역성장했습니다.

이미 10대들의 경우 카카오톡 대신 인스타DM을 통해 소통하는 문화가 자리잡았고, 검색 시장에서 독주하던 네이버의 점유율은 54% 수준으로 구글(41.4%, 빙 포함)에게 턱밑까지 추격 중인 상황입니다. 결국 챗GPT 같은 대화형 AI가 없는 것이 본질적인 문제는 아니었다는 거죠.

뒤늦게 유튜브·인스타처럼 엔터적 요소를 살리기 위해 네이버는 숏폼 플랫폼인 클립을, 카카오는 펑이라는 서비스를 선보였지만 뚜렷한 성과를 못 내고 있습니다. 제 카카오톡 친구가 2200여명인데 펑으로 오늘 게시글을 올린 사람은 딱 한 명 뿐인 상황인 것이 대표적이라 하겠습니다.

<앵커>

그렇다고 전세계가 주목하는 AI를 테크기업이 놓아버리기는 어렵잖아요. 어떤 식으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겠습니까?

<기자>

새로운 대화형 AI 서비스를 내놓는데 집착하기보다 AI를 본업 경쟁력 강화의 도구로 활용하는데 주력해야 한다는 분석입니다. 이미 대화형 AI는 글로벌 기업들이 조단위 비용을 들이며 선점한 상황인데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자신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대화형 AI에 매몰됐다간 자칫 쿠팡을 따라잡으려 비용을 쏟아부었던 유통 기업들의 전철을 반복할 수도 있죠. 경쟁력이 떨어진 검색 기능(네이버)과 톡 애플리케이션(카카오) 기능 개선에 AI를 접목해야 하는 시점입니다.

구글과 네이버 이미지 검색에서 '최근 1년간 삼성전자 주가'를 검색해봤습니다. 구글에서는 삼성전자 주가 그래프가 여럿 노출됐지만, 네이버는 블로그 게시물 홍보글만 다수 노출됐습니다. 과거 네이버의 핵심이었던 블로그가 이제는 검색 경쟁력을 떨어트리고 있는 거죠. 대화형 AI인 네이버 클로바X에서 같은 질문을 했을 때는 '네이버 증시에서 찾아보라'는 답변만 노출됐고요.

카카오도 마찬가지입니다. 가벼운 메신저 기능이 강점이었던 카카오톡은 어느 순간 선물하기, 게임, 쇼핑, 예약 등이 접목되며 복잡하고 무거운 앱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내가 본 콘텐츠를 기반으로 새로운 콘텐츠를 소개하는데 AI 역량을 집중한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에 이용 시간을 빼았기게 됐죠. 지금은 새로운 기능을 더할 때가 아니라 군더더기에 가까운 서비스를 덜어내고, AI를 활용해 여러 서비스 사이의 연계성을 높이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이 지점에서 28일 애플이 선보일 애플인텔리전스에 관심이 모입니다. 자체 AI 개발을 추진하던 애플은 오픈AI의 챗GPT를 활용해 애플 인텔리전스를 구축하는 것으로 방향을 선회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이메일을 요약하거나 문장 수정, 그리고 기존의 애플 시스템인 '시리'를 고도화하는데 챗GPT를 접목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대화형 AI에서 출혈 경쟁보다는 기존 강점인 IOS, 맥OS의 고도화에 AI를 활용하겠다는 거죠. AI 산업의 방향을 가늠하긴 아직 이르지만 눈에 드러나는 신사업이 전부가 아님을 상징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