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에 한 번씩 진행되는 카드가맹점 수수료율 적격비용(원가) 재산정제도의 개편이 시급하다는 제언이 나왔다. 국내 카드수수료의 직접적인 규제로 카드사들의 신용판매 수익이 급감하고, 이는 곧 금융소비자들의 혜택 축소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적격비용제도의 모태가 되는 미국이나 호주 등 주요국들은 이미 시장 중심의 경쟁 촉진을 위해 이 제도를 폐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신금융협회는 14일 '미국·호주 카드수수료 규제정책 현황과 정책적 시사점'을 주제로 2024년 여신금융 정책세미나를 열고, 해외 주요국 중 미국과 호주의 카드수수료 규제 정책 현황을 진단했다.
강경훈 동국대 교수는 주제발표를 통해 "미국은 카드수수료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보다는 경쟁 촉진, 투명성 강화, 소비자 보호 등을 위한 간접적인 규제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이 특징"이라며 "카드수수료 규제는 간접 규제 중심으로, 자산규모 100억 달러 이상의 대형은행이 발급하는 직불카드 정산수수료에 대해서만 예회적으로 2010년 상한규제를 도입, 현재까지 재산정은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이어 "미국의 경제정책은 자유시장 원칙을 기반으로 정부가 가격을 직접 통제하거나 설정하지 않고,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이 결정되도록 하는 것이 기본 입장"이라며 "디지털 혁신에 따른 빅테크, 대형네트워크사간의 공정경쟁, 신규진입 촉진, 제3의 카드네트워크 도입 의무화 등을 반영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호주 역시 2006년 이후로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재산정을 실제 진행한 바가 없고, 오히려 지난 2016년 이 제도를 폐지했다. 장명현 여신금융연구소 선임연구원은 "호주의 경우 이미 카드결제비용 감소라는 목적이 달성된데다 적격비용 산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비용에 비해 효율성이 크게 저하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국내 또한 영세·중소가맹점의 카드수수료 부담 완화라는 정책 목적이 달성됐다고 평가되는 상황인 만큼, 사회적 비용 완화 차원에서 적격비용 산정 주기를 연장하거나 꼭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시점에만 재산정을 행할 필요가 있다"며 "사회적 비용 절감 차원에서 재산정 주기를 유연화하는 방편을 고려할 만하다"고 주장했다.
실제 국내의 경우 카드수수료 적격비용 재산정제도가 도입된 지난 2012년 매출 2억 원 이하의 영세가맹점의 우대수수료율이 1.8%에서 1.5%로 떨어졌고, 약 10여년간 이 수수료율이 인하되며 2024년 현재 영세가맹점 범위는 매출액 3억 원 이하로 상향, 우대수수료율은 0.5%까지 낮아졌다.
당초 취지는 3년에 한 번씩 카드수수료에 영향을 주는 원가를 기반으로 재산정되는 구조였으나, 매번 주기가 선거철과 겹쳐 정치권에서 표심을 위한 '단골 공약'으로 꼽히며 사실상 10차례 가량 인하만 이뤄져왔다.
이 같은 과도한 수수료 규제가 산업의 기형적 구조를 양산한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서지용 상명대 교수는 '적격비용 체계의 바람직한 개편 방향'이라는 주제발표를 통해 "카드사의 정상적 경영을 위해서는 본업인 신용판매 수익성 제고가 선행돼야 하며 이를 위해 적격비용 제도 개편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서 교수는 "카드사는 적격비용 제도로 인해 신용판매 부문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고, 대출부문의 이익을 통해 이를 보전하는 기형적 수익구조를 가진 상황"이라며 "현행 적격비용 제도의 구조적 문제를 개선하는 한편, 획일적 3년 주기 대신 금융시장 급변에 따른 수수료율 변동요인 발생 시에 한해 재산정을 시행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완규 여신금융협회장도 이날 세미나에 참석해 "호주와 미국 등 해외 주요국은 카드수수료 규제 정책 방향이 시장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대처하는 방식으로 이미 오래 전에 바뀐 상황"이라며 "반면 국내 카드사는 카드수수료 지속 인하에 따른 신판부문의 손실보전을 위해 비용절감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절박한 처지에 놓여 있고, 이는 소위 혜자카드 단종과 연회비 인상 등 소비자 혜택감소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빅테크와 경쟁하는 상황에서 소비자 혜택감소는 카드사의 경쟁력을 상실시키고, 궁극적으로 재무건전성을 악화시킬 수밖에 없다"며 "소비자에게 진정한 가치를 제공하고, 카드사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바탕으로 가맹점에도 혜택이 돌아갈 수 있도록 카드생태계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