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표적공습으로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으면서 중동의 긴장감이 최고조로 치솟고 있다.
중동내 친(親)이란 무장세력 연합체 '저항의 축'의 핵심 일원인 헤즈볼라가 자칫 와해될 처지에 몰린 가운데, 맹주인 이란 역시 어떤 식으로라도 나서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이란은 1980년대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를 지원한 것을 시작으로 중동의 반미·반이스라엘 세력을 결집해 저항의 축을 결성했고, 헤즈볼라는 그중에서도 가장 강력한 전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2006년 헤즈볼라와 전쟁을 벌였다가 사실상 패배한 이후 20년 가까이 칼을 갈아 온 이스라엘은 참수작전을 통해 불과 일주일 남짓 만에 헤즈볼라 최상층부 요인 상당수를 제거했다.
15만발의 로켓과 미사일을 지니고도 속수무책 밀리던 헤즈볼라는 결국 27일(현지시간) 저녁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 남부에 은밀히 자리한 지휘 본부까지 폭격 당하는 처지가 됐다.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는 "이스라엘이 이란에 결투장을 던졌다"면서 "이스라엘이 확전을 위해 할 수 있는 행동 중 나스랄라 제거 시도보다 더 강력한 건 (이란 수도) 테헤란에 대한 폭격 뿐"이라고 평가했다.
이란이 헤즈볼라를 비롯한 '대리세력'을 조종해 자국을 공격한다고 주장하던 이스라엘이 결국 이란과의 정면대결을 불사하겠다는 의향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이번 폭격은 "엄청난 도박이고, 수년간 지속될 큰 여파를 남길 수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지적했다.
이란은 그동안 이스라엘이 자국을 직접 공격하는 것을 막기 위한 억제 수단으로 헤즈볼라를 활용해 왔다. 그런 헤즈볼라를 이스라엘이 단순히 약화시키는 것을 넘어 와해시킨다면 이란과 이스라엘 간의 힘의 균형에 근본적 변화가 초래될 수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내다봤다.
헤즈볼라 본부 폭격에 앞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유엔총회 연설에서 "이란에는 이스라엘의 긴 팔이 미칠 수 없는 곳이 없으며, 이는 중동 전체에도 해당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란은 올해 4월 시리아 다마스쿠스 주재 이란 대사관에 대한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이란 혁명수비대(IRGC) 고위 지휘관이 살해되자 이스라엘 본토를 향해 수백 대의 미사일과 자폭 드론(무인기)을 날려보냈다.
다만, 당시 이란은 12일 뒤에야 보복에 나섰고 대부분 미사일이 격추돼 이스라엘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확전을 꺼린 이란이 이스라엘에 대비할 시간을 충분히 줌으로써 수위 조절을 한 결과로 보고 있다.
이란은 지난 7월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의 수장 이스마일 하니예가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암살됐을 때도 이스라엘을 비난하며 보복을 다짐했지만, 아직 실제 행동에 옮기지 않았다.
개혁성향의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취임을 계기로 미국 등 서방과의 관계를 개선해 핵합의를 복원하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내려는 시점에서 이스라엘과 직접 대결하길 원치 않기 때문으로 관측된다.
하지만 헤즈볼라가 무너지는 걸 방치하면 저항의 축에 대한 이란의 지도력이 뿌리부터 흔들릴 수 있다.
레바논 주재 이란 대사관은 헤즈볼라 본부를 겨냥한 이날 공습을 "게임의 규칙을 바꾸는, 위험한 긴장고조 행위"라고 규탄했다.
압바스 아락치 이란 외무장관은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이스라엘과 미국을 싸잡아 비난했다.
그는 "오늘 아침 이스라엘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선물 받은 5천 파운드(약 2천268㎏) 벙커버스터 여러 발을 사용해 베이루트 주거지역을 때렸다"고 주장하면서, 미국이 이스라엘에 군사 지원을 함으로써 이스라엘의 범죄에 공모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한 이날 회의에서 이란을 공격할 수 있다고 발언한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 대해서도 "세간의 이목을 끄는 살인자가 감히 유엔에 나타나 '타국을 침공해 더 많은 이를 죽이겠다'는 터무니없는 위협과 역겨운 거짓말로 유엔총회를 더럽힌 건 역사적 수치"라고 말했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