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29일 '의료공백 사태'의 진단부터 해법까지 인식 차를 다시 한번 드러냈다.
한 대표의 '2026학년도 의대 증원 유예' 제안을 정부와 대통령실이 거부한 가운데, '의정 갈등'의 원인이 된 의대 증원 문제와 응급의료 체계 대책을 둘러싸고 여권 내 갈등이 잠복한 양상이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간 의료 개혁 해법의 시각차는 각각 '원칙론'과 '현실론'이 맞부딪치는 양태인 듯 보인다.
근본적인 문제 해소를 원하는 윤 대통령과 일단 급한 것부터 점진적으로 해결하자는 한 대표의 인식이 서로 합일점을 찾지 못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은 이날 회견에서 의료 공백 관련 질문에 "비상진료체제가 원활하게 가동되고 있다"며 "정부도 열심히 뛰고 있지만, 현장 의사·간호사·간호조무사들이 정말 헌신적으로 뛰고 있기 때문에 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의료인을 더 양성하는 문제는 최소 10∼15년이 걸리는 일이다. 부득이하게 이제 할 수밖에 없다"며 의대 증원 등 정부의 의료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를 호소했다.
실제로 대통령실은 의료개혁이 국민의 생명권과 직결된 문제인 만큼 의대 증원에 저항하는 의료계의 반발에 쉽게 굴복해서는 안 된다고 판단하고 있다.
일각에서 추석 명절 응급의료체계가 붕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지만, 정부가 마련한 특별대책을 통해 현장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이 대통령실 설명이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이날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해 "우리가 만약 과학적 근거 없이 의료계에 굴복해서 의대 정원을 다시 변경하거나 뒤집는다면 이를 지켜보고 있는 국민들이 굉장히 실망할 것"이라며 '의대 증원' 방침을 재확인했다.
반면 한 대표는 이날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 여론과 민심을 다양하게 들어본 결과 (응급실과 수술실 등) 현 상황이 심각하다고 판단했다"며 "그래서 대안을 제시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의료 개혁의 동력은 국민"이라며 "의료개혁 추진 과정에서 국민의 걱정, 불안감도 잘 듣고 반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대통령 회견 뒤 당 연찬회에서 기자들과 만나서도 "국민 건강이나 생명은 감수할 수 있는 위험은 아니지 않나"라며 "국민 불안감을 해소해줄 만한 중재와 타협책이 필요하다"며 증원 유예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한 대표는 전공의 일부라도 복귀를 유도해 의료 공백을 해결하려면 의대 증원 유예 같은 '유인책'이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 외에도 다른 대안이 있다면 얼마든지 수용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친한(한동훈)계인 김종혁 최고위원은 기자들과 만나 응급의료체계와 관련한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 발언에 대해 "저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했다가 만약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그 책임을 어떻게 지겠느냐"라고 비판했다.
의대 증원과 의료 공백에 대한 윤 대통령과 한 대표의 이견이 이처럼 여러 차례 수면 위로 드러나자, 양측이 다소 감정 섞인 신경전을 벌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이 다음날로 예정됐던 윤 대통령과 한동훈 지도부의 만찬을 돌연 추석 이후로 연기한 것을 두고 여권에선 양측의 불편한 감정이 반영된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된 바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처음으로 이날 여당 연찬회에 불참했고, 한 대표는 연찬회에서 정부와 대통령실이 진행한 '의료개혁' 보고 때 자리를 떴다.
그러나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모두 이 같은 정황에서 흘러나온 '당정 갈등' 관측에는 선을 그었다.
윤 대통령은 회견에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는 게 자유민주주의"라며 "당정 간에 전혀 문제가 없다"고 말했고, 한 대표는 "당정 갈등 프레임은 낄 자리가 없고 사치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국민들의 '의료 공백' 우려 여론을 살피면서 정부와 대통령실 설득을 이어갈 것으로 보인다.
한 대표 측 관계자는 통화에서 "의대 증원 문제는 하루 이틀에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라면서 "한 대표가 노력하며 계속 설득하는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대표 측은 오는 1일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의 회담에도 이 문제를 의제로 올리지는 않겠다는 입장이다. 정부 여당의 해법 모색이 우선이며, 야당의 '여권 갈라치기'에 휘말리지 않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한 대표는 이와 관련, "말하는 건 자유다. 중요한 이슈에 대해 서로 간 얼마든 대화할 수 있다"며 정식 의제가 아니더라도 회담 과정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