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에서 은행 금고를 털기 위한 것으로 추정되는 길이 220m 땅굴이 중산층 주택가에서 발견됐다.
지난 6일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산이시드로시 마크로 은행 앞에 주차하려던 배달 직원이 땅 위로 솟아 나온 금속 막대기를 발견해 차량을 다시 주차하다 땅 밑에서 망치를 두드리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고 9일(이하 현지시간) 일간 클라린, 라나시온 등이 보도했다.
직원은 즉시 마크로 은행 보안 직원에게 알렸으며, 은행 측은 하루 뒤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시청에 혹시 땅 밑에서 현재 공사가 진행중인지 문의했지만 그런 건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시청직원들은 금속 막대기가 움직였다는 얘기에 땅 밑을 파기 시작했고 곧 포크레인까지 동원해 파헤치게 됐다.
경찰, 시청, 수도공사, 민방위 직원까지 동원되어 큰 공사를 한 끝에 지하 4m 깊이에 220m 길이의 땅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땅굴은 마크로 은행 금고로부터 불과 수미터를 남겨둔 지점까지 이어져 있었다.
현지 방송에 출연한 엔지니어는 "전기 및 공기 순환 시스템까지 마련된 정말 전문가들이 한 작업"이라면서 "이렇게 깔끔하게 일하다니 정말 내가 고용하고 싶을 정도"라며 감탄했다.
이 땅굴은 마크로 은행에서 수백m 떨어진 자동차 정비공장에서 파기 시작한 것이다. 이 공장은 현재 운영을 하지 않는데 2023년 11월에 해당 정비공장을 빌린 사람들이 1년 치 월세를 선지급했다고 현지 매체 인포바에가 전했다.
검찰은 적어도 6개월 이상 땅굴 작업을 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목표는 마크로 은행의 개인 금고일 것으로 추정했다.
아르헨티나에서는 땅굴을 파서 은행 안 개인금고를 노린 사건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세기의 도난'으로 알려진 2006년 아카수소 리오 은행 사건이 가장 유명하다.
당시 범인들은 1년 넘게 은행으로 연결된 땅굴을 팠다. 범행 당일 가짜 총을 들고 은행 안에서 인질 사건을 벌여 경찰과 언론의 눈을 돌리게 한 뒤, 총 143개의 개인 금고를 털었다.
범인들은 땅굴과 연결된 1.5㎞ 정도의 하수도로 고무보트를 타고 탈출했다. 이들이 훔친 금액은 1천9백만 달러(현 환율로 259억원 정도) 정도로 알려졌다.
그러나 공범 부인의 신고로 일당 중 2명을 제외한 전원이 붙잡히거나 자수했으며, 감옥살이를 하다 지금은 풀려나 유명인으로 살고 있다. 훔친 돈의 행방은 알려지지 않았다. 이 사건은 2020년에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경제 위기를 반복하고 있는 아르헨티나에서는 국민들이 달러로 저축하며, 달러와 귀중품은 은행 내 개인금고에 넣어 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