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행(BOJ) 회의를 앞두고 엔화 가치가 강세로 돌아서는 것이 아닌가는 시각이 급부상하고 있다. 2주 전 38년 만에 최고치인 161엔을 돌파했던 엔·달러 환율은 153 내외수준으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중 850원대까지 떨어지던 원·엔 환율도 900원을 넘어섰다. 엔화 가치가 추세적으로 강세로 돌아선다면 엔화 투자자에게는 반가운 일이다.
특정국의 통화 가치는 머큐리(Mecury·펀더멘털) 요인과 마스(Mars·정책)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 하지만 엔화 가치는 금리 차와 환차익을 노리는 캐리 트레이드 자금 여건도 고려해야 한다. 저금리와 엔저를 바탕으로 경기 회복을 모색하는 아베노믹스를 10년 이상 장기간 추진해 엔화 가치의 결정 요인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이다.
작년 11월 초 엔·달러 환율이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150엔선이 뚫린 이후 일본 정부의 엔화 강세로 돌려놓기 위한 환시 개입이 번번이 실패했다. 재무성이 주관한 달러 매도 개입은 캐리 자금 여건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개입 수단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 외환시장 역사상 최대 규모인 외화만 낭비했을 뿐이다.
가뜩이나 '아오키 법칙(내각과 집권당 지지도가 50% 밑으로 떨어지는 현상)'에 걸려있는 상황에서 환시 개입에 실패했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기시다 후미오 총리와 모테기 도시미쓰 자민당 간사장은 우에다 가즈오 BOJ 총재에게 서둘러 기준금리를 인상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캐리 자금 여건상 엔저를 막기 위한 조치로 충분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종전과는 180도 바뀐 태도라 이번 기회를 통해 아베 신조 전 총리의 영향권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수순이지 않느냐고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오히려 차기 총리로 거론되고 있는 모테기 간사장이 금리 인상을 더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어 이러다 간 BOJ가 정치의 시녀로 전락하는 것이 아닌가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우에다 총재의 고민도 깊어지고 있다. 과연 기시다 총리와 모테기 간사장의 금리 인상 압력을 받아들일 것인가 여부다. 현재 일본 경제는 1분기 성장률은 작년 4분기대비 -0.5%, 미국식 성장률 통계방식인 전분기비 연율로는 -2.0%로 추락해 일본 국민 사이에는 충격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1분기 성장률은 2분기 이후 '복원력(resilence)'과 관련해 두 가지 점을 살펴봐야 한다. 하나는 작년 2분기 이후 분기별 성장률이 전형적인 '더블 딥(1.0%→-0.9%→0.0%→-0.5%)'에 빠졌다는 점이다. 경기순환 상 특정국 경제가 더블 딥에 빠지면 침체 기간이 장기간 지속된다는 의미로 한동안 잊혀 졌던 '잃어버린 40년' 우려가 고개를 들고 있다.
다른 하나는 총수요 항목별 소득 기여도(Y=C+I+G+(X-M), Y: 국민소득, C:민간 소비, I: 설비투자, G: 정부 지출, X-M: 순수출)에서 최대 항목인 민간 소비가 리먼 사태 이후 최장기간인 4분기 연속 감소세를 보였다. 1분기 내내 엔·달러 환율이 140엔 이상 높은 수준이 지속됐지만 순 수출 기여도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점도 눈에 띤다.
단순생산함수(Y=f(L,K,A), L=노동, K=자본, A=총요소생산성)로 일본 경제 성장장애요인을 살펴보면 노동 섹터는 인구절벽과 저출산?고령화로, 자본 섹터는 자본장비율(K/L)을 하락세는 멈췄지만 여전히 토빈 q 비율을 1을 밑돌아 생산성은 문제다. 총요소생산성도 기시다 내각과 집권당인 자민당 간 기득권 카르텔로 좀처럼 제고되지 못하고 있다.
일본 경제처럼 저량(stock)과 유량(flow) 면에서 성장장애요인을 동시에 안고 있을 때는 모든 경제정책은 '긴축'과 '부양'의 성격과 관계없이 반짝 효과만 나는 캠플 주사에 그친다. 주체적인 면에서 기시다 정부와 일본은행, 스펙트럼 면에서 재정과 통화 정책뿐 아니라 환율정책에까지 해당한다.
오히려 조급증에 걸려 정책 기조를 변경하거나 같은 정책이라도 자주 내놓으면 부작용이 더 심하게 나타난다. 현재 일본은 국가채무비율이 270%가 넘어 재정정책 면에서 경기부양 여지가 거의 없다. 10년 이상 장기간 지속된 초저금리와 엔저로 통화와 환율정책에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엔저가 될 추가적으로 확률이 높은 것도 문제다. 우에다 일본은행 총재 이후 수익률 곡선 통제(YCC) 상한선 상향, 금리 인상 등을 통해 출구전략을 추진해 왔으나 엔·달러 환율은 구로다 라인(125엔), 미스터 엔 라인(130엔), 플라자 라인(142엔)이 맥없이 무너졌다. 일본 외환당국의 직접 개입선인 160엔마저 뚫린다면 엔저와 외국인 자금 이탈 간 악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곧바로 175엔선으로 급등할 것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
난기류에 빠진 일본 경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 것인가. 시급한 것은 기득권 카르텔을 끊어 기시다 내각과 자민당의 국민 지지도를 끌어올려 아오키 법칙에 걸린 함정에서 벗어나는 일이다. 정책 신호에 대한 정책 수용층의 반응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어떤 정책을 추진하더라도 효과를 기대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에서 곳곳에 내재한 병목 현상을 푸는 것도 중요하다. 최대 병목 변수인 민간의 높은 저축을 소비로 유도하기 위해 저축을 쓰면 쓸수록 세제 혜택을 주는 '부(負)의 저축세를 도입해야 한다. 산업연관표(I/O)상 병목 현상은 단기간 풀기가 어려운 점을 고려하면 주식 대중화와 주주 환원율 제고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엔저는 '마샬 러너 조건((외화표시 수출수요의 가격탄력성+자국통화표시 수입수요의 가격탄력성)>1)', 엔고는 '내수 확보'라는 전제조건이 충족돼 있지 않은 상황에서 섣불리 통화정책을 변경하는 것보다 재정정책에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과다한 국가채무 제약 여건에서는 '균형재정승수=1'이란 점을 착안한 간지언 정책을 부활시키는 것도 제3의 길이다.
결국 일본 경제가 처한 여건을 고려하면 7월 BOJ 희의를 앞두고 고개를 들고 있는 일부 시각대로 엔화 가치가 근본적으로 강세로 돌아설 확률은 낮아 보인다. 미국과 일본의 정치적 요인으로 엔저에 베팅해 많은 수익을 얻은 환 투기 세력을 중심으로 차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엔·달러 환율이 하락하는 국면으로 판단된다.
환차익을 목적으로 엔고에 베팅하기에는 불안하고 엔화보다 수익을 낼 수 있는 투자 수단이 많은 상황이다. 작년 4월 우에다 총재 취임 이후 BOJ와 Fed의 피봇(BIJ는 금리인상, Fed는 금리인하) 가능성을 권고로 금융사 추천대로 엔고를 샀던 투자자의 환차손이 여전히 큰 상황이다. 최근 900원대로 올라선 원·엔 환율은 작년 4월에 비해 여전히 200원 낮은 수준이다.
한상춘 /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