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이 올해에만 약 1조4천억원 가까이 불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30일 은행권에 따르면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 27일 기준 약 1조2천924억엔으로 집계됐다.
지난 27일 원/엔 재정환율 마감가(100엔당 864.37원) 기준으로 환산하면, 11조1천711억원 규모다.
지난해 말(1조1천330억엔)과 비교하면 올해 들어서만 1천594억엔(약 1조3천778억원·14.1%) 늘었다.
5대 은행의 엔화 예금 잔액은 지난해 4월 말 5천978억엔까지 줄었다가 5월부터 가파르게 증가하기 시작해 같은 해 9월 말 1조엔을 넘어섰으며 전반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엔화 예금 잔액이 증가한 것은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환차익을 기대한 투자 수요가 늘어난 영향으로 풀이된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엔화 환율 레벨이 코로나19 이후 급격히 낮아지면서 엔화 예금 가입이 증가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다만 올해 약 6개월간 엔화 예금 잔액 증가 폭은 지난해 상반기(2천63억엔)와 지난해 하반기(1천957억엔)보다 다소 축소됐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엔화 예금 잔액과 엔화 환전 실적은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 증가하는 모습을 보였다"면서도 "환율이 근 10년 내 최저점이지만, 많은 전문가가 더 떨어질 가능성과 엔저 장기화 전망을 내놓으면서 추세는 꺾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문제는 앞으로의 엔화 가치.
최근 엔화 가치가 하락한 것은 미국의 정책금리 인하가 지연되는 가운데, 일본도 통화 완화 정책에 큰 변화를 주지 않으면서 미국과 일본의 금리 차이가 벌어졌기 때문이다.
주요 은행 투자 전문가들은 엔화 가치가 더 떨어질 수 있다며 일단 엔화를 매수하기보다 하반기 주요국 통화정책 변화를 지켜보고 투자를 결정하라고 조언했다.
안지은 하나은행 하나증권금융센터지점 VIP PB부장은 "일본은행의 긴축 기대감은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고, 구조적 엔화 약세 요인도 있어 엔/달러 환율이 크게 내려오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엔/달러 환율은 연말까지 150엔 안팎에서 머물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엔을 매수하고자 하는 투자자는 엔 약세 기조가 연말까지 유지될 것으로 보이므로 급하게 결정하기보다는 분할매수를 권한다"며 "기존에 엔을 보유하고 있는 투자자들도 7월 일본은행 정책변화와 9월 이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금리 정책 변화를 주목하며 안정화할 때까지 관망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최진호 우리은행 투자상품전략부 이코노미스트 역시 "미국 기준금리 인하 기대는 약해지고 있고 일본의 기준금리 인상 기대는 매우 점진적"이라며 "엔화 약세는 당분간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했다.
최 이코노미스트는 "원/엔 환율 관점에서는 860원 내외 레벨에서 매수 후 900원 내외 레벨에서 매도하는 전략을 고려할 수 있다"면서도 "이 정도 수익률로 만족하지 못하는 투자자라면, 미국 기준금리 인하와 일본 기준금리 인상이 본격화할 1년 이상의 장기적 투자 시계를 갖고 접근하라"고 권했다.
정성진 KB국민은행 강남스타PB센터 PB는 "한국 투자자 입장에서 과거 대비 많이 떨어진 원화를 매입해 향후 엔화 상승 시 환차익을 노리려면 2가지 인내 요건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정 PB는 "엔화를 매입하면 이율이 없기 때문에 나중에 되팔 때 환차익을 제외하고는 보유하는 동안의 이자가 없고, 엔화 상승이 상당히 불투명해 그 시점을 알기 어려운 것도 문제"라며 "시간을 두고 투자할 수 있는 여유자금으로 투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일본 중앙은행인 일본은행은 내달 30일부터 31일까지 금융정책위원회를 열어 통화정책방향을 결정할 예정이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