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의 한국 국채 투자 절차가 대폭 간소화된다.
그동안 외국인 투자자가 국채를 거래하려면 국내 보관 은행에 본인 명의 계좌 개설하는 등의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했지만 앞으로는 국제예탁결제기구(ICSD)의 국채통합계좌를 이용해 환전부터 국채 매매 대금 결제까지 손쉽게 할 수 있게 된다.
정부는 이를 통해 한국 국채에 대한 외국인의 신규 투자가 활성화 돼 국채 금리와 환율 안정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오는 27일부터 국제예탁결제기구(ICSD)인 유로클리어와 클리어스트림의 국채통합계좌가 개통된다고 26일 밝혔다.
유로클리어는 2023년 말 기준으로 37조 7억 유로, 클리어스트림은 18조 유로의 수탁증권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국제적인 예탁결제기구로서 선진 국채시장의 핵심 인프라를 담당하고 있다.
국채통합계좌는 ICSD가 한국예탁결제원에 개설한 계좌로, 이 계좌를 통해 한국 국채와 통화안정증권에 대한 예탁과 결제 서비스가 본격적으로 제공될 예정이다.
국채통합계좌 도입 이전에 외국인 투자자는 한국 국채를 거래하기 위해 국내에 보관은행을 선임하고 본인 명의의 외화·원화 계좌를 개설해야 했다.
이 과정에서 금융실명제, 고객확인제도 등 국내 관련 법령에 따라 요구되는 서류 확인 등의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했다.
그러나 이번에 국채통합계좌가 도입되면서 앞으로 외국인 투자자는 국내에 따로 계좌를 개설하는 번거로운 결차 없이 ICSD 명의의 계좌를 통해 환전과 국채 매매대금 결제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와 함께 기재부는 외국인 투자자의 한국 국채 거래를 보다 활성화하기 위해 국채통합계좌를 활용한 외국인투자자의 원화거래에 대한 특례조치로 마련했다.
우선 외국금융기관(RFI)에서 환전한 자금을 ICSD 명의의 계좌로 바로 송금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RFI는 국내 외환시장에 직접 참여하는 외국 금융기관을 말한다. 현재 제도로는 RFI에서 환전한 원화는 외국인 투자자 본인 명의의 계좌로만 송금이 가능하다.
투자자 본인 명의 계좌를 거치지 않고도 ICSD 명의의 계좌로 송금할 수 있게 되면, 추가로 국내 계좌를 열지 않아도 RFI를 통해 환전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이를 통해 신규 투자자의 국내 시장 유입을 촉진할 것으로 기대된다.
비거주자 간의 ICSD를 통한 원화 결제도 허용된다.
국채통합계좌를 이용하는 외국인 투자자도 국채 매매·환매조건부매매(Repo)·담보제공 거래 등을 원화로 자유롭게 결제할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ICSD를 통한 일시적 원화 차입(Overdraft·오버드래프트)도 허용한다.
앞서 정부는 올해 3월부터 외국인 투자자가 증권매매와 관련해 결제실패 발생 우려가 있는 경우 본의 명의의 계좌가 개설된 국내 은행으로부터 일시적으로 원화를 차입할 수 있도록 허용한 바 있다. 일종의 투자용 '마이너스 통장'을 개설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앞으로는 국제예탁결제기구 명의의 계좌 내에서도 원화를 차입할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 계좌가 없는 신규 외국인 투자자도 원화 차입이 가능해져 기존에 국내은행과 여신계약을 맺는 데 필요한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기재부는 이같은 조치들이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한국 국채 시장 접근성을 크게 높여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에도 한 걸음 더 가까워졌다고 분석했다.
곽상현 기재부 국채과장은 "외국인 국채투자의 편의성이 증대되면 유동상 증가로 이어져 국내 국채시장이 투자에 매력적인 시장이 되는 선순환구조가 만들어질 것"이라며 "이는 세계국채지수(WGBI) 편입을 위한 큰 스텝임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국제예탁결제기구 국채통합계좌 개설은 세계국채지수 편입여부를 심사하는 FTSE러셀이 가입 요건으로 제시한 4대 항목 중 하나다.
국채통합계좌 구축이 WGBI 편입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건은 아니지만, 외국인 투자자의 접근성 제고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평가다.
또 이번 국채투자 외국인 전용계좌 계통으로 글로벌 투자 자금이 우리나라 국채시장에 많이 들어오면 국채금리가 안정화돼 조달비용이 낮아지는 효과도 누릴 수 있게 된다.
일반적으로 국채 금리가 안정되면 회사채 금리가 낮아져 기업의 자금 조달비용을 줄일 수 있고 가계 대출이자도 낮아질 수 있다.
곽 과장은 "외국인의 채권 투자가 늘어나면 채권의 적정가격 산출이 용이해지고 조달비용을 낮추는 데에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시장에선 외국인은 보유한 달러화를 담보 삼아 외환시장에서 원화를 빌려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에 외국인의 국채 투자가 활성화되면 달러가 국내 시장에 유입되는만큼 간접적이지만 환율 변동성을 줄여줄 수 있다는 기대도 내놓고 있다.
다만 외국인의 일시적 원화차입 허용 등으로 외환시장의 안정성이 저해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유동성 확대로 오히려 변동성이 작아져 시장 안정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이 기재부의 설명이다.
정여진 기재부 외환제도과장은 "유로클리어와 클리어스트림은 오버드래프트와 관련한 자체 규율이 있고 과도한 오버드래프트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통제장치도 가지고 있다"며 "우리나라의 펀더멘탈 등을 고려하면 안정성에 대한 우려도 크지 않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