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1만원 시대...믿었던 '고용'의 배신 시작됐다 [전민정의 출근 중]

입력 2024-06-15 08:00


최저임금위원회가 올해는 배달라이더와 웹툰작가 등 특수형태근로자·플랫폼 종사자에 대한 최저임금 별도 적용 논의를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내년 도급제 근로자 최저임금의 심의의 새 화두였던 '최저임금 확대 적용'을 둘러싼 노사간 공방이 일단락 된 건데요.

다시 관심은 '최저임금 인상 폭'과 '업종별 구분 적용'으로 옮겨지는 모습입니다.

매년 최저임금 심의가 시작되면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어려움을 토로하는 소상공인들과 자영업자들의 호소는 더 귓가를 때립니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고용지표를 보면 이러한 소상공인들의 외침을 최저임금 심의 때마다 으레 내놓는 푸념으로만 치부할 수 없어 보입니다.

그야말로 마주하고 싶지 않은 가혹한 '현실'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듭니다.



● 최저임금 인상 여파…'나홀로 사장님' 폐업 줄 잇는다



최근 발표된 5월 고용동향을 보면 직원 없이 홀로 일하는 '1인 자영업자'는 1년 전보다 11만4천명 줄었습니다. 2018년 9월 11만 7천명 이후 가장 큰 낙폭입니다.

1인 자영업자(고용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지난 3월 3만5천명 감소에서 4월 9만4천명, 지난달엔 11만4천명이나 급감했는데요.

코로나19를 거치며 누적된 경영난과 대출금에 시달리며 급격히 오른 최저임금에 지불능력에 한계를 맞은 영세 자영업자들이 '폐업'이라는 마지막 선택을 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2025년 최저임금 관련 소상공인 자영업자 긴급간담회'에서도 빚에 허덕이고 있는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마저 1만원을 넘어서면 "차라리 폐업하겠다"는 울분이 속출했습니다.

정경재 대한숙박업중앙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숙박 분야 고용률은 외식에 이어 두 번째로 많고 대출은 가장 많은데 직원들은 무조건 최저임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이 때문에 정작 숙박업주는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비율이 39%에 달한다"고 말했습니다.

외식업계를 대표해 참석한 유덕현 서울시 소상공인연합회장(외식업 운영) 역시 "명목상 최저임금은 9,860원이지만 음식업종에 있어 실질 최저임금은 이미 1만원이 넘어선 상황"이라며 영세 소상공인은 현재 종업원보다 못한 연봉이 계속 깎이는 위치에 있어 폐업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속내를 밝혔습니다.

지불능력을 고려한 최저임금 구분적용 필요성에 대한 호소도 이어졌습니다.

김기홍 한국인터넷PC카페협동조합 이사장은 "최저임금이 모든 업종에 동일하게 적용되니 힘든 업종에서는 일을 안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며 "PC업계 경우 과거부터 24시간 운영이 되는데 하루에 3인 이상을 고용해야 해 늘어난 인건비 부담으로 인해 사장이 일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했습니다.

계상혁 전국편의점가맹점협회 회장도 "매년 전기요금 인상분이 월 30~40만원, 최저임금 인상분 30~40만원까지 고정비로 월 70~80만원의 추가 지출이 생기는데 자영업자들은 이렇게 매해 협박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는데요.

그러면서 "매년 7~800만원의 연봉이 깎인다면 사업을 계속할 수 있겠냐"며 편의점 업종에 대한 구분적용을 강하게 요구했습니다.



● 자영업자 흔들리자…고용시장 다시 '먹구름'

지난해 취업자수는 1년 전보다 30만명 이상 늘고 고용률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이례적인 호조세를 보였는데요.

코로나 엔데믹으로 외부활동이 늘어난 데다가 돌봄수요, 정보통신 분야가 증가세를 보이며 고용시장에 '훈풍'이 분 겁니다.

이러한 견조한 고용의 흐름은 올해 상반기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모습입니다.

지난 4월 취업자 수의 경우 수출 호조에 힘입어 20만명대로 회복하며 같은 달 기준 역대 최고 고용률(62.7%)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자영업자 고용상황이 흔들리면서 고용시장 전체에 다시 먹구름이 끼고 있습니다.

지난달 취업자 수는 1년 전보다 8만명 늘어나는 데 그치며 코로나19 여파가 미친 2021년 2월(-47만3천명) 후 증가폭이 3년 3개월만에 최소 수준으로 쪼그라들었습니다.

정부는 취업자 증가 8만명 '쇼크'에 대해 15일 석가탄신일이 휴일이었던 점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는데요. 5월 고용동향 조사기간인 주간에 휴일이 포함돼 단시간 근로자 일부가 미취업자로 일시적으로 분류돼 취업자 증가 흐름이 일시적으로 주춤했다는 겁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국내 고용 시장이 반등하기보다는 추가 둔화할 여지가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조사 기간 휴일이 포함되는 등 일부 노이즈가 있었지만 국내 고용시장이 미국보다 둔화 강도가 강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고 지적했는데요.

'고령자 취업자 수 나홀로 증가', '서비스 부문 일자리 부진'과 함께 '자영업자로 대변되는 비임금근로자 일자리 감소세'를 잠재적 고용 둔화 위험의 근거로 꼽기도 했습니다.

● "사실상 최저임금 1만원 벅차"…쪼개기 알바 더 늘었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한 '일자리 질 악화' 현상도 고용지표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지난달 주 1~17시간 취업자 수는 270만9천명이었는데요. 이는 1년 전보다 53만5천명 늘어난 수치로, 통계 작성 이후 5월 기준 역대 최대치였습니다.

이처럼 질낮은 일자리로 분류되는 초단기 일자리가 급증한 건 최저임금 부담이 큰 자영업자들이 '쪼개기 고용'을 늘린 영향이 컸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올해 국내 최저시급은 지난해(9,620원)보다 2.5% 오른 9,860원인데요. 주 15시간 일하는 근로자에게 일주일마다 하루씩 유급휴가를 줘야 하기에, 주휴수당까지 더하면 사실상 1만2천원에 육박합니다.

최저임금 상승의 직격탄을 맞은 자영업자들이 주휴수당이라도 피하기 위해 시간대를 잘게 쪼개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을 여러명 고용하는 '쪼개기 알바'는 이미 업계 관행이 된지 오래입니다.

이에 따라 자영업자가 많은 업종의 주당 취업시간도 줄었는데요. 지난 5월 주당 평균 취업시간은 35.4시간으로 1년 전에 비해 4.2시간 감소했는데, 업종별로 보면 도소매와 숙박음식점업(39.0시간)에서 각각 2.9시간 감소를 기록했습니다.

이처럼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감소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이미 통계 지표로도 여실히 확인되고 있습니다.

앞서 최저임금이 전년도에 비해 10%나 급격히 오른 2019년에도 최저임금 인상이 도소매·음식숙박업 등 취약업종의 고용 감소에 일정 부분 영향을 미쳤다는 고용노동부의 첫 분석 결과가 나왔었는데요.

노동계는 고물가·고금리 기조가 이어지며 실질임금의 하락세가 두드러진 만큼,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또 업종별 구분 적용은 차별이며 형평에 반한다는 주장도 있고요.

하지만 단순히 생계비나 실질임금만이 최저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기준이 되기엔 우리 경제가 맞딱뜨린 현실이 암울한 것도 사실입니다.

시장 상황에 맞게 최저임금 인상이 미칠 효과 등에 대한 객관적이고 심도 깊은 연구들이 더 필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