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브랜드를 함께 판매하는 멀티샵, 유통업계에만 존재할까? 금융회사들도 더 이상 자사의 상품만 판매하지 않습니다. 금융회사도 타사의 상품을 함께 판매하는 멀티샵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금융사간 시장점유율 경쟁이 치열하지만, 멀티가 아니고는 생존이 힘들어진 만큼 너도나도 '동맹의 손'을 뻗어 상품군을 늘리고 있는 추세입니다. 금융사들은 왜 적군과 손을 잡고 멀티샵을 자처하고 있을까요.
◆ 신한은행서 전체 카드 비교한다
신한은행은 최근 시중은행 최초로 5개 카드사와 제휴를 맺고 '신용카드 비교·중개 서비스'를 오픈했습니다. 신한은행의 모바일 앱인 '신한 SOL뱅크' 앱 내에 이 서비스를 탑재해 소비자들의 편의성을 높였다는 평가입니다.
신용카드 비교·중개 서비스는 개인 소비현황에 따른 추천 카드상품과 예상 혜택 금액과 같은 정보를 제공해줍니다. 현재 신한카드와 롯데카드, 현대백화점카드, NH농협카드가 제휴에 참여했고, 해당 카드사들의 60여개 카드 상품 정보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번 서비스의 특징은 단순히 카드 비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카드 발급을 원할 경우 각 카드사의 앱으로 바로 연결된다는 점입니다. 말 그대로 신한은행을 통해 다른 금융사의 신용카드 발급이 가능해진 겁니다. 신한은행은 향후 더 많은 카드사와의 제휴를 추진해 카드상품 라인업을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 롯데에서 동양 보험상품도 판매
이 같은 움직임은 보험업권에서도 나타납니다. 롯데손해보험은 최근 생명보험사인 동양생명과 '교차 판매' 제휴를 맺었습니다. 교차판매는 생명보험사 소속 설계사가 손해보험사 상품을 판매하고, 반대로 손보사 설계사는 생보사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제도입니다.
그간 다양한 보험사 상품을 한 번에 판매할 수 있는 곳은 법인보험대리점(GA)뿐이었는데, 롯데손보는 이번 혁신적인 시도를 통해 소속 설계사들의 소득을 증대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통해 설계사 정착률은 물론 계약 건전성도 높아질 것으로 회사는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번 제휴에 따라 양사 설계사들은 롯데손보의 권역별 54개 본부와 동양생명 11개 지점간 매칭을 통해 보험 서비스 판매를 위한 위촉과정을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습니다. 롯데손보는 앞으로 다른 생보사와의 교차판매 제휴도 확대한다는 방침입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롯데손보 설계사를 통해 다른 생보사의 상품을 가입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겁니다.
◆ 은행과 손 잡은 삼성금융
최근 삼성금융 계열사들이 KB국민은행과 제휴를 맺는 '세기의 동맹'도 이슈가 됐습니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삼성카드, 삼성증권으로 구성된 삼성금융네트웍스는 시중은행인 KB국민은행과 업무협약을 맺고, 삼성금융의 통합 금융 플랫폼인 '모니모' 업그레이드에 나서기로 했습니다.
현재 삼성금융과 KB국민은행은 첫 협업 사례로 모니모 회원 전용 입출금통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삼성 금융계열사는 은행이 없어서 통장 발급이 불가능한데, KB국민은행과의 제휴를 통해 모니모 회원들에게 혜택을 더 주는 입출금통장을 출시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를 시작으로 모니모 전용 금융상품과 서비스를 공동 기획하고 데이터 분석과 활용과 같은 협업 모델도 발전시켜 나가기로 했습니다. 삼성금융은 KB국민은행이 보유한 상품 경쟁력과 채널망을 활용하고, KB국민은행 역시 업권 1위사를 보유한 삼성금융의 데이터를 활용해 시너지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입니다.
◆ "멀티샵 안 되면 생존 어렵다"
점유율 경쟁에 민감한 금융사들이 '적군'과 손을 잡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같은 변화에는 빅테크 플랫폼의 등장이 큰 영향을 줬습니다. 카카오와 네이버, 토스와 같은 빅테크 플랫폼은 무서운 속도로 금융권에 진입해 자체 플랫폼이 지닌 어마어마한 월간활성화이용자수(MAU)를 기반으로 금융시장 점유율을 늘려가고 있습니다.
이 같은 빅테크 플랫폼의 가장 큰 강점은 여러 금융거래가 한 번에 가능하다는 점과 다양한 금융상품을 비교까지 할 수 있는 '소비자 편의성'입니다. 금융에 대한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금융소비자들의 금융지식도 향상된 만큼, 금융사 입장에서도 자사의 상품만 판매하는 것은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앞서 금융지주사들은 이와 유사한 사례로 은행과 증권, 보험 등 다양한 계열사 상품을 한 번에 만나볼 수 있는 금융복합점포를 운영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금융거래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비대면으로 상당수 옮겨지면서, 이제는 하나의 금융플랫폼 안에서 얼마나 다양한 금융거래가 가능한지, 얼마나 많은 이용자수를 끌어올 수 있는지가 경쟁력이 됐습니다.
보험사간 교차판매나 상품비교서비스와 같은 멀티샵 운영은 자칫 적군의 상품을 팔아주느라 자사 상품 판매에 소홀해질 수 있다는 우려점도 지니고 있지만, '나눠먹기'를 감내해서라도 소비자들을 플랫폼으로 끌어오는 것이 더욱 중요한 시대가 도래한 겁니다.
이 같은 금융사들의 멀티샵 진화는 더욱 속도가 붙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습니다. 소비자 입장에선 금융거래 편의성이 높아지는 만큼 긍정적일 수밖에 없겠죠. 그 어느 때보다 '잘 비교하고 잘 선택하는' 현명함이 필요한 시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