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빈자리 '외국 의사'가 채운다…정부 초강수

입력 2024-05-09 11:53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한 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이들의 빈 자리를 채우고자 '외국 의사'에게 국내에서 일할 수 있는 길을 터주기로 했다.

언어 문제 등으로 외국 의대를 졸업하거나 면허를 취득한 교포 및 한국인 등이 대상이 될 전망인데, 의사들은 "대한민국 정부는 없는 게 낫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9일 정부와 의료계에 따르면 보건복지부는 이달 20일까지 의료법 시행규칙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보건의료 위기경보가 지금의 의료공백 사태처럼 '심각' 단계에 올랐을 경우, 외국 의료인 면허 소지자도 복지부 장관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의료 지원 업무를 할 수 있게 했다.

복지부 장관이 승인만 하면 외국에서 딴 의사 면허를 가지고 한국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전공의들이 의대 증원 백지화 등을 요구하며 석달째 의료 현장을 이탈하자 정부로서는 의료공백 사태의 장기화에 대응해 '고육지책'을 내놓았다고 할 수 있다.

정부의 이번 조치에 따라 외국 면허 소지자들은 입법예고 기간이 끝난 뒤 이르면 이달 말부터 국내에서 의료행위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전공의가 떠난 수련병원 등 정해진 곳에서만 국내 전문의의 지도 아래 진료할 수 있게 된다.

의료계 안팎에서는 해외에서 면허를 취득한 교포나 외국 의대에서 공부한 한국인이 이번 정책의 주된 대상이 될 것으로 본다.

그동안 외국에서 의대 졸업 후 현지에서 면허를 취득한 사람이 우리나라에서 의사가 되기는 상당히 어려웠다.

외국 의사 면허를 지녔다고 해도 필기와 실기로 이뤄진 국내 의사 예비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이후 국가시험인 '의사국시'(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 주관)를 봐야 한다.

현재 정부가 국내 국가고시 지원 자격을 인정해주는 외국의대는 159곳(총 38개국)이다.

그러나 2005∼2023년 이들 대학 졸업자가 국내 의사 예비시험(필기/실기)을 통과한 비율은 55.4%에 그쳤다.

더구나 외국의대 졸업자가 예비시험과 의사국시 관문을 뚫고 최종적으로 국내 의사면허를 발급받은 비율은 33.5%에 그쳐 3명 중 1명에 불과했다.

이는 2018∼2022년 우리나라 의사국시 전체 합격률이 최저 86.3%, 최고 97.6%였던 점에 비춰보면 턱없이 낮은 수준이다.

개정안이 시행되면 외국의대 졸업자 중 70%에 가까운 의사국시 탈락자들에게 국내에서 진료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셈이다.

정부가 외국 의사의 국내 진료까지 허용하면서 의정(醫政)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사들은 정부의 이번 대책이 국내 의료 수준을 크게 떨어뜨릴 것이라며 일제히 비난의 목소리를 냈다.

노환규 전 대한의사협회(의협) 회장은 페이스북에 "싱가포르는 서울대 의대와 연세대 의대만 자국의 의사면허 시험을 치를 수 있도록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고, 일본의 의사면허 취득은 출신 의대와 무관하지만 언어시험과 의사면허 시험을 모두 합격해야 한다"며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들이 자국민들의 생명 보호를 위해 이처럼 까다로운 제도들을 유지하고 있고 이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적었다.

이어 "그런데 지금 윤석열 정부가 벌이고 있는 짓거리는? '너희들이 먼저 항복하지 않으면 나는 무슨 짓이든지 할 거야'라며 투정을 부리는 초등생을 보는 듯하다. 아니면 중2병인가요?"라고 비꼬았다.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