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산업 육성을 위해 '돈줄'이 절실한 유럽연합(EU) 내에서 27개국 자본시장 통합 논의가 재점화됐다.
샤를 미셸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18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특별정상회의가 끝난 뒤 "EU내 민간 저축 규모는 33조 유로(약 4경 8천조원)로, 이 돈이 우리 기업에 투자될 방안을 찾아야 한다"며 "해법은 자본시장동맹(CMU)"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자본시장동맹이 곧 유럽판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이라고 주장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도 EU 내 자금 대부분이 주로 미국 시장에 유출되는 건 "우리 자본시장과 금융 시스템이 파편화돼 있기 때문"이라며 자본시장동맹 '완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이날 채택된 정상회의 공동성명에도 전략 부문 투자 자금 조성과 관련 "민간 자본이 풀리려면 자본시장동맹 진전이 필수"라고 명시됐다.
장클로드 융커 전 EU 집행위원장 재임 시절인 2014년 처음 등장한 용어인 자본시장동맹은 국가 간 투자 장벽을 낮추고 중소기업 자금조달을 용이하게 하도록 27개 회원국 자본시장 통합한다는 개념이다.
현재는 주식 등 금융시장 역시 국가별로 분산돼 있어 민간 투자를 유인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왔다.
또 유럽 기업들의 자금 조달은 80%가량이 은행 대출을 통해 이뤄질 정도로 창구가 제한적이다.
은행은 통상 대출 심사에 보수적이어서 스타트업 등 중소기업은 자금 확보가 상대적으로 더 어렵다.
이에 EU는 27개국 전역의 금융·자본시장이 통합돼야 '진정한' 단일시장으로서의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특히 녹색 및 디지털 등 미래산업 육성을 위해선 수조 유로에 달하는 자금이 확보돼야 하는 것으로 추산돼 국가 보조금 확대 등 공적자금만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민간 자본을 통한 자금 조달 확대가 시급한 셈이다.
미국과 중국의 적극적 산업 육성·투자 정책 여파로 갈수록 유럽 내 자본유출 및 제조업 쇠퇴가 심화할 것이란 위기감도 적지 않다.
그러나 수년 전 자본시장 통합 필요성이 거론됐다가 중단된 전례가 있어 이번에도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EU 회원국 중에서는 프랑스, 독일 등 경제 규모가 큰 국가들은 자본시장 통합 필요성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자본시장 통합이 오랫동안 논의됐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며 "이것이 그간 EU 경제성장이 저조했던 이유"라고 지적했다.
숄츠 총리는 "자본이 한군데로 모이면 좋은 투자 기회가 무엇인지 평가하기가 쉬워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소규모 국가들은 통합시 자국 경제에 불리할 수 있다며 회의적인 입장이다.
가령 낮은 세율 정책 등으로 유럽 내 민간 자본 투자를 유치해온 아일랜드, 룩셈부르크 등은 시장 통합시 법인세 조정 등이 필요해 투자자들이 떠나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자본시장 통합시 개별 금융당국 대신 EU의 관리·감독 권한이 강화되는 것을 두고도 의견이 엇갈린다.
독일, 프랑스는 미국에 필적할 만한 투자 환경을 조성하려면 EU 기구가 시장 감독 업무를 주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에 비해 룩셈부르크 등 소규모 국가들은 EU로 권한이 '중앙집권화'되는 데 반대한다.
이날 정상회의에서도 자본시장동맹에 관한 공동성명 문안을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히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27개국은 최종 채택된 공동성명에서 "유럽 강독 당국이 초국경 자본 및 금융 시장 행위자를 효과적으로 감독할 수 있는 조건에 대한 평가 및 작업을 해달라"며 행정부 격인 집행위원회에 일단 공을 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