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오전 대만 동부 해역에서 규모 7.2의 강진이 발생했다.
현재까지 대만 전역에서 사망자 9명, 부상자 1,011명이 발생하는 등 피해가 극심하지만, 한국 증시에서는 대만 지진이 '잔인한 호재'로 작용하는 모습이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오후 1시 39분 기준 삼성전자는 1.31% 오른 8만 5,200원에 거래되고 있다. SK하이닉스도 같은 시각 4.46% 상승하며 거래 중이다. 대만 지진으로 TSMC 공장이 점검에 돌입하는 등 일부 생산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반사이익을 얻고 있는 것이다. 현재까지 눈에 띄는 대만 반도체 기업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추후 여진이 발생함에 따라 외국인 투자자들이 대만이 아닌 한국으로 자금 유입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대두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부 투자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과거 사례를 돌이켜보면 우리 증시와 반도체 기업에 미칠 긍정적인 영향은 '제한적'일 전망이다.
◇ 2021년 자동차 반도체 부족 사태
2021년 3월 31일 오후, 북부 신주 과학단지 내 TSMC 12공장에서 불이나 정전 사태가 발생했다. 이후에도 4월 14일 14공장에서 정전이 발생해 수일간 가동이 지연되는 등 당시 TSMC는 정상적인 공장 운영에 차질을 겪고 있었다.
당시 자동차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전 세계가 반도체 대란을 겪고 있었던 만큼 이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그리고 코스피 전체의 외국인 순매수 금액은 적게는 3일, 길게는 일주일간 크게 증가했다.
실제로 TSMC 화재 소식이 알려지기 전인 31일 1,300억 원 가까이 삼성전자의 주식을 팔아치웠던 외국인은 1일과 2일 각각 3,100억 원, 5,020억 원을 사들였다. 14공장에서 정전이 발생했던 14일 500억 원을 매도했던 외국인은 그다음 날 1,140억 원을 매수하기도 했다.
언뜻보면 TSMC에 발생한 대내외적인 리스크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같은 국내 반도체 기업에는 호재로 작용한 듯 보였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았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가는 일시적인 강세를 보인 이후 오히려 추세적인 하락세로 진입했고 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유의미한 외국인 수급도 찾아볼 수 없었다. 결국 단기적인 이슈에 그친 것이다. 두 회사 모두 최근 AI 이슈가 대두되기 전까지 오히려 기나긴 주가 부진의 늪에 빠졌었다.
물론, 과거의 TSMC 사고의 경우에는 하루 만에 시설 복구되거나 길어야 2~7일이 걸리는 경우였다. 피해 규모 역시 연간 총 수익의 0.1% 미만 정도로 추산된다.
이번 지진으로 인한 TSMC의 피해는 2분기 수익의 0.5% 정도로 더 높은 상황이다. 하지만 시장조사업체 트랜드포스에 따르면 TSMC가 향후 가동률을 끌어올리면 충분히 커버 가능한 수준으로 예상되는 만큼 2021년 당시보다 더 명확한 호재로 작용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 규모 7.0 이상의 일본 대지진 발생
한편, 과거 일본에서 발생한 진도 7 이상의 대지진은 우리 증시에 추가 상승 여력을 제공했다는 분석도 있다.
2000년도 이후 일본에서 진도 7 이상의 대지진이 발생했던 사례는 3번이다. 니가타현 대지진(04.10), 동일본 대지진(11.03), 구마모토현 지진(16.04)이다.
IBK투자증권 측에 따르면 코스피는 해당 이벤트 발생 30일 후 각각 4.7%, 7.4%, -0.7% 수익률을 기록했으며, 60일 후에 6.6%, 8.0%, 1.8%의 수익률을 기록하는 등 수익률이 개선되거나 추가 상승을 이어가는 모습을 보였다.
일본과 지리적으로 매우 인접해 관련 리스크 노출도가 높은 한국 증시가 반사이익 수혜 영향으로 호조세를 보이게 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익률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본과 한국의 수익률 격차가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2004년 당시 4.1%였던 지진 발생 60일 이후의 수익률 격차는 각각 3.6%, 0.5%로 줄어들었다.
또한, 올해 1월 발생한 규모 7.6의 이시카와현 지진은 발생 이후에도 일본과 한국 수익률 사이에 유의미한 차이를 보여주지 못했다.
◇ 대만 지진 그 영향은 '제한적'
일본·대만과 같은 이웃 국가에서 지진이나 화재 같은 대내외적 리스크 발생하면 과거에는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국이 반사이익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이 존재했다. 하지만 과거 사례를 수치와 함께 면밀히 들여다보면 단기적인 호재에 그치거나 최근 들어서는 단기적으로도 작용하지 못하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증권가에서도 "현재는 글로벌 공급망이 복잡하게 얽혀 있어서 국가 사이의 경계선이 불분명해졌다"며 "'A 대신 B 국가에 투자해야지' 혹은 'A 기업 대신 B 기업에 투자해야지'라는 개념이 흐려졌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과 AI 호재 이슈로 외국인 자금이 충분히 들어와 있고 반도체 공급 과잉 이슈가 대두되는 지금은 더욱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경환 하나증권 연구원은 "최근 2주간 이미 신흥국 시장에서 대한민국에 대한 외국인 자금은 경쟁자(중국, 대만, 아세안, 인도 등)를 압도했다"며 "이미 외국인의 유입이 충분히 이루어진 상황에서 이번 계기로 대만에 갈 자금이 한국으로 들어온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건 미래에셋증권 연구원도 "최근 들어 메모리 반도체 계약 가격의 하락 폭이 발생하고 공급에는 과잉 이슈가 관찰되었던 만큼 이번 대만 지진을 바탕으로 반도체 가격의 눈에 띄는 상승이나 수요 증가를 찾기는 어려울 전망"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재앙 수준의 자연재해가 아니라면 거시경제와 업황, 개별기업의 펀더멘털이 주가를 결정한다는 경제 교과서의 내용은 이번에도 똑같이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대만에서 발생한 불행한 사태가 국내 기업의 반사이득으로 연결되는 기계적인 패턴이 반복되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