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이 회사채 수요예측에서 시장금리보다 금리를 낮게 제시하는 영업 방식이 논란이다.
회사채 주관·인수 업무를 맡기 위해 증권사 간 경쟁이 치열한 가운데 금리를 조금이라도 낮게 제시할수록 계약을 따내는데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주관이나 인수 역할을 맡은 증권사의 금융 그룹 계열사가 수요예측에 무더기로 참여하기도 한다. 업계에선 이를 '캡티브(Captive) 영업'으로 부른다. 주관 계약을 차지하려는 증권사와 금리를 조금이라도 낮게 발행하고 싶어 하는 발행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다. 그러나 아무리 법 테두리 안에서 진행하는 것이라고 해도 적정 신용등급 수준의 금리보다 많게는 몇 단계 높은 신용등급 수준의 금리로 결정된다는 것은 적정한지 따져봐야 할 필요가 있다.
과도한 고객 유치 경쟁이 부쩍 심해진 것은 부동산PF(프로젝트파이낸싱) 부문이 위축되면서부터라고 한다. 수년간 증권사의 '노다지' 역할을 해 왔던 부동산PF 사업 부진으로 IB 수수료 수입이 급감하면서 증권사들은 회사채 발행과 유상증자 같은 정통 IB 분야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회사채 주선 수수료가 그리 높진 않지만, 빈번하게 발행되는 특성상 증권사 입장에선 놓칠 수 없는 사업 영역이란 설명이다. 발행사들은 보통 주관사를 정할 때 인수 실적 순위를 뜻하는 '리그 테이블(순위표)'과 '자기자본', '기여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는데, 이 가운데 기여도에는 '무더기(캡티브) 영업'이 포함된다. 출혈 경쟁으로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지금의 경쟁 환경을 만든 배경이다.
'제 살 깎아 먹기식' 경쟁의 결과가 증권사 손익 악화로 이어지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 채권을 비싸게 사 온 만큼 증권사들은 이를 시장에 적정 가격을 받고 시장에 팔아야 하는데, 가격이 비싸면 과연 이를 사 갈 투자자가 있는지 의문이기 때문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투자자들이 해당 채권이 적정 가격이 아니라고 판단하면 투자자들이 참여를 안 할 것"이라며 "비용 부담을 증권사가 상당 부분 가져가게 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김대종 세종대학교 경영학부 교수도 "출혈 경쟁을 계속한다면 증권사의 신용도에도 큰 위험 요소가 된다"고 말했다.
물론 앞으로 금리가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고 증권사와 그 금융 계열사가 선제적으로 회사채 시장에 참여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채권 가격과 금리는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금리가 본격적으로 떨어지기 전 미리 사 두는 것으로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캡티브 영업에 따른 가격 왜곡이 불러올 부작용은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이유가 무엇이든 개별 증권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득이라는 계산이 깔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발행기업별로 이른바 '나눠 먹기식' 관행이 있다면 당장 문제가 될 것도 없어 보인다. 하지만 이렇게 개별 채권 가격의 왜곡이 누적되면 이를 사들이는 기관투자자나 여기에 소중한 돈을 투자한 개인투자자 모두 패자가 될 수 있다. 신용등급과 동떨어진 금리가 관행으로 자리 잡으면 채권시장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는 신용등급 평가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수요예측 마감을 몇 초 안 남기고, 대표 주관 증권사나 인수 증권사가 금리 맨 하단에 입찰해 물량을 받아 가는 것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 시장과 학계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회사채 무더기 영업의 실태를 파악하고 이런 영업 관행이 문제가 없는지 진단할 몫은 감독 당국에 있다. 65조 원에 달하는 회사채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는 이해할 수 있으나 너무 늦은 대응은 오히려 파국을 키울 수 있다. 채권시장에서 '구성의 오류'가 더 이상 자리 잡을 수 없도록 막을 책임 있는 안전장치 마련이 필요하다. 금융사고가 터져야 제도 개선에 나서는 악순환을 또 되풀이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