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가 회사채 인수·주선 업무를 따내기 위해 계열 은행이나 자산운용사까지 동원해 수요예측에 참여해 일제히 낮은 금리를 적어내는 영업 방식이 고착화 되고 있습니다.
보다 낮은 금리를 받으려는 발행기업의 수요와 갈수록 우량채가 줄면서 불러온 과열경쟁이 사실상 관행으로 자리 잡은 것입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신용평가사에서 A+등급으로 평가 받은 회사채 금리가 AA등급과 차이가 없는 기현상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채권시장의 근간인 신용평가시스템을 무력화 하는 왜곡 현상이 심각하다며 관행을 시정하기 위한 안전장치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합니다.
신재근 기자가 단독 보도합니다.
한국경제TV가 입수한 한 상장기업의 300억 원 공모 회사채 수요예측 결과표입니다.
수요예측 마감 시한을 8초 남겨두고, 회사채 발행 대표 주관사인 한국투자증권이 회사 고유 자금 100억 원을 가장 낮은 금리로 적어 냈습니다.
민간 신용평가사들이 평가한 해당 상장사의 평균금리 보다 40bp(-0.4%포인트) 낮은 수준으로 채권가격과 금리는 정반대로 움직이니까 보다 비싼 가격을 제시한 것입니다.
수요예측일(2/21) 기준 이 회사의 신용등급인 A+보다 세 단계 높은 AA+ 수준의 금리를 제시한 것인데 결국 최종 금리는 신용등급보다 두 단계 높은 AA 수준으로 결정됐습니다.
같은 회사채 인수단으로 참여한 키움증권도 수요예측 마감을 4분 남기고, 개별민평 금리보다 35bp(-0.35%) 낮은 금리에 100억 원을 적어 냈습니다.
회사채 시장에 정통한 업계 관계자는 "주관·인수 업무를 맡은 증권사가 민간 채권평가사 평균 금리보다 낮게 수요예측에 참여한 것이 문제"라며 "경쟁을 부추기면서 정작 (채권을) 가져가려고 하는 사람(투자자)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수요예측 이후 상장사는 해당 회차 회사채 모집액을 300억 원에서 600억 원으로 늘렸는데, 이 중 400억 원을 대표 주관사와 인수단이 가져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다른 상장사의 회사채 수요예측에서도 인수 증권사인 흥국증권이 마감 1분 전 금리 맨 하단에 200억 원을 적었고, 또 다른 인수 증권사인 키움증권과 미래에셋증권도 민평금리보다 낮은 금리에 수요예측에 참여했습니다.
수요예측일(2/21) 기준 모두 회사채 신용등급인 AA+보다 높은 AAA 이상의 금리를 제시했고, 최종 금리는 AAA(3.79%)등급을 훌쩍 뛰어넘는 연 3.60%로 정해졌습니다.
주관이나 인수 역할을 맡은 증권사의 금융 그룹 계열사가 수요예측에 함께 참여하는 이른바 '무더기 입찰'도 이뤄지고 있었습니다.
키움증권이 인수 업무를 맡은 회사채 수요예측에 키움투자자산운용은 민평금리보다 낮은 금리로 참여했고, 교보증권도 인수 업무를 맡은 회사채 수요예측에 교보악사자산운용이 동참했습니다.
신한은행과 신한자산운용은 신한투자증권이 인수 업무를 맡은 회사채 수요예측에 민평금리보다 20bp 이상 낮은 금리를 써냈습니다.
전문가들은 과도한 경쟁으로 발행금리가 적정 금리보다 낮아지면서 발행 채권의 고평가가 고착된다고 경고합니다. 과열된 개별 회사채 발행, 인수 경쟁이 채권시장의 근간인 신용평가와 신용등급을 무려화 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 김대종 /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 "이것(채권 가격)이 고평가 되면 가격 왜곡 현상이 일어나게 되고, 신용평가에도 서로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금감원은 이같은 증권사의 과열 경쟁에 대해 "살펴볼 사안으로 인지하고 있다"면서 "현황을 파악 중이고 학계와 업계의 의견을 수렴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한국경제TV 신재근입니다.
영상취재: 양진성, 채상균
영상편집: 노수경
CG: 심재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