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세대분리, 기금고갈·세대갈등 해법 부상 [신용훈의 일확연금]

입력 2024-02-24 09:00
수정 2024-02-25 12:06
2054년 재정 고갈이 예상되고 있는 국민연금.

이를 막기 위해 2023년 10월 국민연금 재정계산 위원회에서는 총 24개의 최종 연금개혁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건복지부에 제출했다.

소득대체율과 보험료율 인상, 연금 지급 연령 상향등의 변수들을 넣어 조합한 이들 시나리오는 가장 적합한 조합을 제시한 것이 아니어서 혼란만 부추기는 백화점식 나열에 그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현 세대의 연금 부담을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하는 기본 구조에 큰 변화가 없어 젊은 세대의 불만도 여전하다.

이런 상황에서 '24년 2월 21일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내놓은 신·구세대의 연금을 분리하는 개혁안이 새로운 대안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에 오늘은 새롭게 부상하는 신·구 국민연금 분리 방안의 내용과 실제 제도 도입 시 어떤 것이 달라질 수 있는지 살펴보자.



미래세대 희생 없는 연금개혁…연령대별 적립금이 핵심



신·구세대의 연금 분리 방안의 핵심은 앞 세대가 받는 연금을 뒷세대가 부담하지 않도록 한다는 것이다.

지금의 국민연금 제도는 인구수가 많은 노령층의 연금을 상대적으로 적은 인구의 젊은 층이 떠받치는 구조다. 이와 달리 신연금 제도에선 연령대별로 각각 기금을 조성하고 각 세대는 자신들이 조성한 적립금으로 국민연금을 받게 된다.

예를 들어 2006년생은 2006년생들끼리 2007년생은 2007년생들끼리 각각의 연령별 가상 계좌에 적립금을 쌓아 두고 이를 운용한 수익을 더해 노후에 연금으로 받는 식이다.

출생 연도별로 일종의 거대한 모임통장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같은 또래 중에서 기대수명보다 일찍 사망하는 사람이 늦게 사망하는 사람에게 소득을 이전하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연금 보전 문제로 인한 세 대갈들을 없앨 수 있고, 출생률 저하에 따른 적립금 부족 문제도 해소할 수 있다.

받는 연금 줄지만 과도한 보험료 부담 없고, 재정 고갈 막을 수 있어



KDI가 내놓은 신연금 제도의 또 다른 장점은 보험료율을 조금 올리는 것만으로 재정 고갈을 막고 국민연금의 영속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데 있다.

현 제도하에서 2054년 재정이 고갈된 이후 소득대체율 40%를 유지하면서 연금을 계속 지급하려면 보험료율을 35% (현 9%)까지 올려야 한다. 하지만 신연금 제도하에서는 보험료율을 15.5% 정도까지만 인상해도 40%의 소득대체율을 유지하고 재정 고갈도 막을 수 있을 것으로 추산된다.

다만 받는 연금액은 현행 연금 제도를 통해 받는 액수보다 줄게 된다. 기대수익비 즉, 가입자가 사망 시까지 받을 것으로 약속된 총 연금액을 그동안 낸 보험료와 기금 운용수익으로 나눈 값이 현 연금제도에서는 평균 2.2이지만 신연금 제도에서는 1에 가까워지게 된다. 다시 말해 현 제도하에서는 내가 낸 것보다 2.2배 정도를 연금으로 더 받지만, 신연금을 도입하면 내가 낸 수준만큼 혹은 그보다 조금 더 받는 수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2024년부터 새로운 연금제도가 도입된다면?

국민연금 의무 가입연령이 만 18세부터인 만큼 신·구연금 분리방안이 2024년부터 시행이 되면 2006년생부터 새로운 국민연금 제도가 적용된다. 이때 2006년 이전 출생자들은 기존 제도와의 단절 현상을 겪게 된다.

의무가입 기간이 끝난 사람과 기존 연금제도 하에서 보험료를 내온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먼저 만 60세 이상으로 국민연금 보험료 의무납부 기간이 끝났거나 연금을 이미 받고 있는 사람이라면 구 연금제도대로 평생 국민연금을 받으면 된다. 이미 보험료를 다 납부했거나 연금개시가 된 만큼 이들을 새로운 제도로 묶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국민연금을 아직 받기 전 세대이다.

신·구연금 분리제도를 설계한 KDI 이강구 신승룡 연구위원은 이들에 대해 2가지 제도를 모두 적용하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기존 가입 기간에 대해서는 구연금 방식으로 산정을 해 받고, 신연금 제도가 도입된 이후부터는 신연금 제도에 따라 연금을 산정해 받게 한다는 것이다.

노후에 신·구 두 종류의 연금을 받는 구조가 되는 셈이다.

이강구, 신승룡 연구위원은 또 신연금 제도 도입에 따라 발생하는 기존 연금 적립금 부족분은 국가재정으로 메우는 방안을 제시했다.

신연금 제도의 도입과 함께 구연금 방식의 보험료 납부는 완전히 중단되는데, 이렇게 되면 노령층에게 줘야 할 적립금은 더 이상 쌓이지 않고 계속 소진만 된다.

언젠가는 구연금 적립금이 바닥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때 부족분을 정부의 재정으로 메우자는 것이다.

이번에 제시된 국민연금 개혁안은 내야 하는 보험료가 늘어나고, 기금 운용 수익률에 따라 받는 연금은 연령대별로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 연령별 기금을 별도로 운용하기 위해 더 많은 비용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 등 좀 더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큰 숙제인 '국민연금의 영속성'과 '뒷 세대 부담 전가' 문제를 명료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지 않은 관심을 받고 있다.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로 또 다른 혼란을 야기한 24가지 시나리오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