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오는 22일에도 기준금리를 현 3.50%에서 묶을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아직 한은의 목표(2%)까지 충분히 떨어지지 않은 데다, 가계부채 증가세가 꺾였다고 보기도 어려운 만큼 한은이 서둘러 금리를 낮출 이유가 없다는 게 경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더구나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Fed)가 여전히 물가 관리를 강조하며 금리 인하를 주저하고 있어 한은이 미국보다 앞서 금리를 내리면서 역대 최대 수준(2.0%p)인 두 나라 간 금리 격차를 더 벌릴 가능성도 거의 없다.
전문가들은 대체로 미국이 6월께 인하를 시작하면 한은도 하반기부터 통화정책의 키를 완화 쪽으로 틀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 여전히 불안한 물가…"농산물·유가 등에 상승률 다시 오를수도"
19일 연합뉴스가 경제 전문가 6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모두 한은 금융통화위원회(이하 금통위)가 22일 통화정책방향 결정 회의에서 기준금리를 다시 동결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은 무엇보다 아직 금리를 낮출 만큼 물가와 가계대출 불씨가 완전히 꺼지지 않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2월(3.2%)까지 5개월 연속 3%대를 유지하다가 1월(2.8%) 반년 만에 2%대로 내려왔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태다.
김웅 한은 부총재보도 최근 물가 상황 점검회의에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수요 압력 약화, 국제유가 하락 등의 영향으로 둔화 흐름을 이어가고 있지만, 지정학적 리스크(위험)로 유가 불확실성이 커지고 농산물 등 생활물가도 여전히 높다"며 "당분간 물가 둔화 흐름이 주춤해지면서 일시적으로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다소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물가가 2.8%로 내려왔다고는 하지만 다시 3%대로 오를 가능성이 크고, 가계부채 문제도 여전할 뿐 아니라 미국도 물가가 충분히 낮아지지 않아 금리 인하를 계속 미루고 있다"며 한은의 동결을 예상했다.
박정우 노무라증권 이코노미스트도 "유가 안정과 국내 소비 부진에 따라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예상보다 큰 폭으로 떨어졌지만, 여전히 2%를 상회하는 만큼 동결 기조를 뒷받침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재균 신한투자증권 연구위원 역시 "물가 상승률이 기조적으로 둔화하고 있지만, 아직 목표(2%)와 괴리가 있어 물가 안정이 더 필요한 상황"이라며 동결을 점쳤다.
◇ 꺾이지 않는 가계부채에 부동산까지 들썩…"금리 인하에 부담"
가계부채가 계속 늘어나고 총선을 앞두고 쏟아지는 개발 공약 등의 영향으로 부동산 시장까지 다시 들썩이는 점도 한은의 조기 금리 인하를 막는 요인으로 거론됐다.
조영무 LG경영연구원 연구위원은 "한은이 공식적으로 물가보다 강조하지는 않겠지만, 경제 규모(GDP)와 비교해 지나치게 큰 가계부채 규모, 불안한 주택 가격 등에 큰 우려와 부담을 느낄 것"이라며 "금리를 낮추지 못하는 표면적 이유로 물가를 거론한다고 해도, 현재 한은 입장에서 동결 요인으로서 가계부채와 부동산의 무게는 인플레이션(물가 상승)과 거의 비슷한 수준일 수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예금은행의 가계대출(정책모기지론 포함)은 1월까지 10개월째 계속 불어나고 있다. 특히 1월에만 전세자금 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855조3천억원)이 4조9천억원 늘었는데, 1월 기준으로는 2021년 1월(+5조원) 다음 역대 두 번째로 큰 증가 폭이다.
지난달 11일 금통위가 금리를 동결할 당시 회의에서도 한 위원은 "앞으로 통화정책 기조 전환에 있어서는 인플레이션 압력 둔화와 기대의 안정 여부를 우선시하면서, 민간 부채 등도 함께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 기준금리 7월 인하론 우세하지만…"4분기에나 가능" 전망도
미국이 이른바 고물가 시기의 마지막 국면에서 너무 일찍 통화정책 완화로 돌아섰다가 물가 안정기 진입 자체가 무산되는 이른바 '라스트 마일(목표에 이르기 직전 최종구간) 리스크'를 경계하는 분위기도 한은의 동결에 무게를 싣고 있다.
지난 16일(현지 시각)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1월 생산자물가지수(PPI) 상승률(0.3%)은 전문가의 전망치(0.1%)를 크게 웃돌았다. 여전히 미국의 인플레이션 압력이 작지 않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연준이 5월 이전에 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기대도 크게 꺾인 상태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미국의 물가 지표가 예상보다 높기 때문에 미국의 기준금리 인하 시점이 일러야 2분기, 늦으면 3분기로 넘어갈 수도 있다"며 "미국이 금리를 안 내리는데 한은이 먼저 내릴 수는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은의 첫 인하 시점에 대해서는 7월 가능성이 여전히 거론됐지만, 4분기까지 늦춰질 것이라는 견해도 나왔다.
안예하 키움증권 선임연구원은 "연준이 6월 인하를 단행하면, 이를 확인한 한은도 7월부터 금리를 낮출 가능성이 있다"며 "0.25%포인트(p)씩 7·8월 연속 인하한 뒤 10·11월 중 한 차례 더 내려 연말까지 모두 세 번, 0.75%p 기준금리가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장 위원도 "미국이 6월에 금리를 낮추면 한은도 7월 인하가 가능할 것"이라며 "7·8월 중 한 번, 10·11월 중 한 번, 이렇게 연내 두 차례 내릴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박 이코노미스트 역시 "2분기 이후 수출 증가율이 둔화할 뿐 아니라 PF(프로젝트 파이낸싱) 구조조정에 따른 건설 부문 부진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소비 부진도 이어질 것"이라며 "따라서 한은도 7월부터 금리를 낮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조 연구위원은 "시장이 예상하는 미국 금리 인하 시점이 3월, 5월을 거쳐 이제 또 6월로 늦춰지는 분위기"라며 "한은은 미국이 인하 기조로 돌아서 꽤 금리를 낮춘 뒤에야 모든 것을 확인하고 4분기께 인하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