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게임들이 중국 당국으로부터 외자판호 발급에 또다시 성공했다.
2일 중국 국가신문출판서가 발급한 외자판호 32건에는 네오위즈 고양이와스프, 넥슨 던파 오리진, 넷마블 킹오파 올스타즈 등이 포함됐다.
중국 당국이 막혔던 문을 본격적으로 다시 개방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22년 12월부터다. 중국 당국은 재작년 12월과 작년 3월, 8월, 12월에 걸쳐 한국 게임에 대한 외자판호를 발급해왔다. 이 기간 판호를 받은 한국 게임은 15개에 달한다. 넥슨의 '메이플스토리M', 넷마블의 '제2의나라:크로스월드'와 'A3:스틸얼라이브',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와 '에픽세븐' 등이 2022년 12월 판호를 발급받았으며, 2023년에는 넥슨게임즈 '블루아카이브', 데브시스터즈 '쿠키런', 넷마블 '일곱개의대죄', 엔씨소프트의 '블레이드앤소울2', 위메이드의 '미르M', 그라비티의 '라그나로크X' 등이 연이어 판호를 받았다.
하지만 이같은 진출행렬 속에서도 아직까지 이렇다할 흥행작은 나오지 않고 있다. 출시 3개월 이후에도 매출 20위권을 지킨 게임은 메이플스토리M 하나에 불과하다. 계속되는 판호발급에도 게임사들의 실적과 주가 개선 기대감이 낮아진 배경이 여기에 있다.
▲ 진출하면 이미 늦다…현지화 속도 한계
무엇보다 '현지화'에 과도한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 부진의 원인으로 꼽힌다. 현지 시장에 진출하기 전에 이미 게임 트렌드가 변하거나, 비슷한 형식의 게임이 현지업체로부터 출시되는 일이 많기 때문이다. 중국은 결제 등 비즈니스 모델을 비롯해 그래픽의 잔인성, 문화적인 요소 등의 측면에서 세부적인 제한규정을 두고 있다. 국내에서 신규IP를 론칭한 게임사가 중국 시장에 진입하려면 판호가 발급된 후 중국용으로 게임을 다시 만들어야 한다. 이로 인해 국내에 론칭된 게임이 중국시장에서 론칭되는 데 길게는 2년도 걸린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중국 게임사들의 개발역량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유니티, 언리얼 엔진 등 게임개발 도구가 발전하고, AI의 발전으로 게임아트나 3D 모델링이 자동화되면서 중국 게임의 품질과 개발속도가 빨라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의 스토리를 창작하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릴지 모르지만, 기존 게임의 코드와 아트 등을 활용해 유사한 게임을 빠르게 제작하는 것은 손쉽다"며 "중국 게임사들이 빠르면 하루만에 게임을 카피하는 것도 가능할 정도"라고 전했다.
▲ 세계는 '팔월드' 신드롬…한국, 배그 이후가 없다
PC/콘솔 게임 시장에서 한국 게임의 부진은 더 오래됐다. 전세계적으로 팔월드 광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일본과는 사뭇 대조적인 모습이다. 일본 인디게임업체 포켓페어사가 개발한 팔월드는 최근 출시 2주만에 이용자가 1,900만명을 돌파하며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다. 이를 판매량으로 단순 환산해도 최소 6천억원 이상의 매출 성과다. 팔월드의 성공은 RPG, 전략 등 기존의 장르 구분을 넘어 RPG와 건설, 육성, 전략 등 다양한 장르가 혼합됐다는 데서 찾는 시각이 많다. 또 출시 전 트위치 등 게임 스트리머들을 통해 게임을 홍보하며 입소문을 타고, 이용자들의 피드백을 적극 반영한 점도 흥행의 비결로 꼽힌다.
PC/콘솔 시장에서 일본의 선전은 어느정도 예견됐다는 게 시장의 평가다. 이미 수많은 일본 게임사들이 이 시장에 신작을 내놓으며 IP의 확장을 거듭해 와서다. 2월 현재 스팀게임 기준 매출 상위 10위권을 보면, 일본 게임이 4개로 상위권을 독차지하고, 미국 2개, 중국 1개, 캐나다 1개, 독일 1개 등이다.
한국의 경우 6년 전 PC게임으로 출시한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가 세계적인 돌풍을 일으킨 이후 별다른 성공사례를 내놓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말 엔씨소프트가 야심차게 내놓은 신작 'TL'을 비롯해, 올해 카카오게임즈가 PC/모바일 크로스플랫폼으로 출시를 예고하고 있는 '롬(레드랩게임즈)' 역시 MMORPG 장르라는 점을 감안하면 세계적으로 인기가 높아지고 있는 장르파괴의 트렌드에 부합할 수 있을지 의구심이 제기된다. 네오위즈의 경우 'P의 거짓'으로 PC/콘솔 게임시장에서 비교적 선전했다는 평가지만, 이렇다할 후속작이 없다는 점이 아쉽다는 분석이다.
▲ 모바일게임 성장 여전하지만…안방도 내준 한국
PC/콘솔 시장의 뜨거운 인기에도 불구하고 모바일게임 시장의 성장은 여전히 강력하다. 중국음상디지털협회와 게임출판공작위원회가 발표한 '2023년 중국 게임산업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기준 중국 게임산업 매출은 3,029억6,400만 위안, 우리돈 약 55조3천억원 수준이다. 이는 중국의 게임산업 판호 규제로 시장이 위축됐던 지난 2022년 대비 13.95% 증가한 것으로 역대 최대 규모다. 특히 전체 매출의 75%(41조)가 모바일 게임으로 23%(13조원) 수준인 PC/콘솔 게임 시장 규모에 비해 절대적이다. 모바일게임을 통한 중국 진출 전략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국산 모바일게임들이 국내 시장에서 조차 경쟁력이 밀리고 있다는 데 있다. 올 1월들어 중국 조이나이스 게임즈의 방치형RPG '버섯커키우기'가 '리니지M'을 누르고 앱매출 1위를 차지하는 등 이변이 연출됐다. 또 퍼스트펀의 라스트워 : 서바이벌, 센추리게임즈의 'WOS:화이트아웃' 등 중국 게임사들이 연이어 10위권 안에 진입하며 국산 MMORPG의 위상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조이나이스 게임즈의 경우 지난해 7월 '개판오분전-1004뽑기 증정'이라는 게임을 출시해 수많은 이용자 피해 민원을 일으킨 뒤 먹튀 논란이 제기된 바 있다. 정부가 올들어 이를 막기 위해 앱마켓 사업자 등 자체 등급 분류사업자와의 협업을 통해 국내법을 준수하지 않는 게임물의 유통금지를 추진하겠다는 방침을 밝혔지만, 페이퍼컴퍼니를 동원하는 해외 게임사를 적절한 시기에 규제하고 이용자 보호의무를 강제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제기되는 실정이다.
또 이른바 리니지라이크 일색인 순위권 경쟁이 모바일게임 시장에 신규이용자 유입을 제약하면서, 해외 게임사들의 순위권 진입을 용인하게 됐다는 지적이다. 매출 7위로 접어든 넷마블 '세븐나이츠키우기(방치형RPG)' 같은 새로운 시도들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 "게임주 투자, 중국보다 글로벌 봐야"
시장 전문가들은 거듭되는 중국 외자판호 발급을 게임업계의 핵심 호재로 인식하는 시대는 지났다고 평가한다. 외자판호 발급이 곧 흥행으로 이어지던 과거와는 상황이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임희석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게임업계 핵심화두는 이제 중국보다 글로벌"이라며 "글로벌에서 잘되면 중국에서도 흥행 확률이 높은 만큼, 글로벌 흥행성과가 있을만한 게임이 먼저 나오는 게 우선순위"라고 강조했다. 임 연구원은 "국내 게임사들이 이제는 나가서 숫자로 보여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
이번에 외자판호를 발급받은 네오위즈의 모바일게임 '고양이와 스프'가 대표적인 사례다. '고양이와 스프'는 지난 2021년 10월 출시 이후 글로벌 누적 다운로드 수 5,500만건을 기록하며 꾸준한 인기를 이어 왔다.
올해 글로벌 출시를 준비하고 있는 신작으로는 컴투스의 '프로스트펑크 : 비욘드 더 아이스', 넷마블의 '나혼자만레벨업', 카카오게임즈의 '롬', 시프트업의 '스텔라블레이드', 넥슨 '프라시아 전기', 위메이드 '나이트크로우', '판타스틱4 베이스볼', 엔씨소프트 'TL'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