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에도 실패했는데…'무전공' 확대, 전망은

입력 2024-01-15 06:08


교육부의 정책 방향을 좇아 수도권 대학들이 앞다퉈 2025학년도부터 '무전공' 선발 신설·확대에 나서는 모습이다.

하지만 무전공(자유전공)이 10여년 전에도 도입됐다가 여러 부작용으로 인해 폐지된 적이 있어, 그 전철을 밟지 않고 이번에는 성공을 거둘지 주목된다.

무전공은 학생이 1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지 않고 다양한 과목을 듣다가 2학년 때 자기 적성에 맞춰 진로를 정하는 제도를 뜻한다.

13일 교육계에 따르면 무전공은 '자유전공학부'라는 이름으로 지난 2009학년도에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최근에는 교육부가 '융합형 인재'를 키운다며 주요 대학의 무전공 확대를 권장하고 있지만, 당시 자유전공학부는 정부 지침으로 만들어진 과는 아니었다.

각 대학에 따르면 자유전공학부는 2009학년도에 서울대(정원 157명), 연세대(150명), 고려대(123명), 이화여대(40명), 중앙대(133명) 등에서 생겨났다.

당시 이들 대학은 자유전공학부의 도입 목적에 대해 "미래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융합 학문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학전문대학원 신설로 법대가 없어지자 법대 정원을 새로운 학과로 이전하려는 목적도 강했다.

하지만 막상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한 학생은 상경 계열 등 인기 있는 과로 진학하거나 법학전문대학원 준비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융합 학문의 양성이라는 본래 취지와는 맞지 않게 인기학과로 가는 '디딤돌'로 전락한 것이다.

이런 부작용이 나오면서 대학들은 자유전공학부 운영을 점차 중단하게 됐다.

중앙대는 바로 다음 해인 2010학년도부터 자유전공학부를 폐지했고, 대신 정책학과 행정학을 전공하는 공공인재학부를 신설했다.

연세대 자유전공학부도 점점 정원이 줄어들더니 도입 후 6년 후인 2015학년도에 원래 정원의 5분의 1로 줄어든 35명의 신입생을 마지막으로 폐지됐다.

한국외국어대학교는 2005학년도에 서울 캠퍼스(121명)와 글로벌 용인 캠퍼스(인문 154명, 이공계 21명)에서 도입했다가 2013년도 이후 폐지됐다.

현재 자유전공학부가 유지되는 곳은 서울 주요 대학 가운데 서울대(123명)와 고려대(95명), 이대(40명) 정도다.

이들 가운데 한 대학은 자유전공학부 입학생의 80% 정도가 2학년 때 경영대와 컴퓨터공학과 전공을 선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교육부는 학생들의 전공 선택권을 폭넓게 보장하고, 미래 사회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키운다며 주요 대학의 무전공 입학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

교육부가 최근 마련한 시안에 따르면 수도권 대학과 거점 국립대 등은 2025학년도부터 무전공 선발을 확대해야 정부로부터 인센티브 사업비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대학들은 무전공 도입이나 확대를 검토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많은 대학에서는 무전공을 급하게 추진할 경우 지난 2009학년도 도입 당시와 같은 부작용이 생길까 봐 우려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서울 주요대 입학처장들은 "무전공으로 학생을 뽑는다면 분명히 '인기학과 쏠림'이 우려되지만, 대학도 어쩔 수 없이 감수해야 할 것 같다"고 말한다.

한 대학 입학처장은 "갑자기 교육부에서 규모까지 정해져 내려오는 바람에 무전공 학생들이 2025학년도에 입학할 때 어떤 교육을 받을지가 문제가 될 것 같다"며 "자기 전공을 선택할 때 영향을 줄 수업 과정을 세심하게 짜는 것이 중요한데, 이는 쉽지 않은 작업"이라고 털어놨다.

다른 대학 입학처장도 "무전공으로 뽑으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순의 대학 서열화가 더욱 심해질 것"이라며 "또한 막상 학교에 들어가도 본인이 선호하는 과보다는 인기학과를 선택하는 경향이 심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대학 진학 때 자신의 진로를 면밀하게 고민해 전공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서울대', '연세대' 등 간판만 보고 무전공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많아질 수 있다는 우려다.

그는 "결국 학생이 없는 과는 소멸하게 되고, 학과 구조조정이 벌어지게 된다"며 "그런 면에서 우리 대학은 무전공 도입에 신중한 입장"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