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의 딜레마…"붐비는 건 싫은데 든든한 돈줄"

입력 2024-01-01 06:27


유럽이 과잉 관광(오버투어리즘)으로 시달리고 있지만 막상 해외 관광객이 줄어들면 적지 않은 나라가 경제에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고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가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최근 이탈리아 북부 수상도시 베네치아는 올해 6월부터 단체 관광객의 규모를 25명으로 제한하고 관광 가이드의 확성기 사용도 금지한다고 발표했다.

베네치아는 올해 4월부터 당일치기 관광객에게 입장료 5유로(약 7천원)도 부과한다. 코로나19가 끝난 뒤 세계적 관광명소인 이 도시에 관광객이 폭증하면서 환경 파괴는 물론 주민의 일상까지 위협받는 부작용이 커진 탓이다.

이탈리아 외에도 영국 맨체스터나 스페인 발렌시아, 포르투갈 어촌 마을 올량 등 새로 관광세를 도입하는 지역이 늘었다.

프랑스와 크로아티아 등 일부 국가는 인기가 덜 한 곳으로 관광객을 유도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고 스코틀랜드와 아이슬란드는 '느린 관광'을 장려하고 있다.

'느린 관광'은 지속 가능한 관광 형태로, 이동 수단을 줄이고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탐험하는 동시에 환경을 보호하는 게 특징이다.

과잉 관광에 현지 주민이 겪는 불편함이 커지다 보니 유럽 대도시 곳곳에서는 '이건 관광이 아닌 침략', '관광객, 당신은 테러리스트'라고 쓴 낙서를 발견할 수 있다.

텔레그래프는 그러나 정작 유럽에서 관광 산업이 사라지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여행관광협회(WTTC)에 따르면 2022년 관광 산업은 유럽 경제에 1조6천억 파운드(약 2천646조원)를 안겼다. 코로나19 팬데믹 이전인 2019년보다 7% 낮지만, 2020년과 2021년에 비하면 대폭적인 상승이다.

유럽 전역에서 약 3천470만명이 관광업에 종사하고 지중해 지역 국내총생산(GDP)의 약 15%가 관광업에서 창출된다.

텔레그래프는 유럽 각국에서 관광업이 무너졌을 때 발생할 경제적 우려를 사례별로 전망했다.

대표적으로 실업률이 12.8%로 유럽연합(EU)에서 가장 심각한 스페인에서는 약 300만 명이 관광업에 종사하고 있다. 관광 산업이 없다면 추가적인 대량 실업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이탈리아의 국가 보건 예산은 한 해 관광 수입과 비슷한 수준이고, 포르투갈 관광 산업은 2022년 무려 61.6% 성장해 GDP의 15.8%에 해당하는 330억 파운드(약 54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된다. 특히 포르투갈에서는 2022년에 전년보다 8만3천개의 일자리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한때 국가 부도 위기를 겪은 그리스는 관광업이 경제의 생명줄로, GDP의 약 5분의 1을 차지한다. 인구 1천30만명 중 약 80만 명이 관광업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특히 주민 1만5천명의 산토리니에는 연간 최대 200만명의 관광객이 찾아 이 지역 GDP의 90%가 관광업에서 나온다.

프랑스에서도 코로나19로 관광객의 발길이 뚝 끊겼을 때 약 20만개 일자리가 사라진 아픈 경험이 있다.

텔레그래프는 "팬데믹으로 많은 국가가 한꺼번에 몇 달 동안 관광이 중단되면 국가와 지역 경제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경험했다"며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가와 도시는 과잉 관광과 경제 사이의 딜레마에 직면해 있다"고 짚었다.

유럽인이 과잉 관광에 불평하면서도 정작 자신들 역시 그 원인 중 하나라는 지적도 나온다.

엔데믹 이후 보복 관광이 늘면서 2022년 영국에서만 누적 7천100만명이 해외를 방문했고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핀란드, 프랑스, 오스트리아에서는 국민 4명 중 3명 이상이 휴가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