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집중호우가 온 서울 강남역 일대에서 맨홀에 빠져 사망한 남매의 유족에게 구청이 16억여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이 내려졌다.
작년 8월 8일 폭우가 쏟아지던 서초구 강남역 일대에서 차를 타고 가던 A씨와 B씨 남매는 폭우로 시동이 꺼지자 차에서 내려 대피했다. 이후 비가 잦아들자 도로를 건너다 뚜껑이 열려 있던 맨홀에 빠져 숨졌다.
27일 법조계에 따르면 남매 A·B씨의 유족이 서초구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3부(허준서 부장판사)는 "피고는 원고들에게 총 16억4천700여만원과 지연이자를 지급하라"고 최근 판결했다.
재판부는 "맨홀 설치·관리의 하자로 인해 사고가 발생한 만큼 해당 도로의 관리청인 서초구는 피해자 유족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사고 장소가 지대가 낮고 항아리 지형이라 집중호우 때마다 자주 침수됐으며, 하수도에서 빗물이 역류해 맨홀 뚜껑이 열릴 가능성도 충분히 있었다고 지적했다. 구청이 맨홀 뚜껑이 항상 닫혀 있도록 관리해 차량 등의 통행에 지장을 초래하지 않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서초구 측은 "맨홀 뚜껑이 열렸던 것은 '기록적 폭우'라는 천재지변 때문으로 사고를 예측하거나 회피할 수 없었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재판부는 맨홀 뚜껑이 예상치 못한 폭우 때문에 열렸다고 해도, 그 상태로 방치된 데에는 서초구의 관리 책임이 있다고 짚었다.
또 과거 비가 더 적게 내렸을 때도 맨홀 뚜껑이 열렸던 점 등을 봐서 이번 사고가 천재지변 때문이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다만 A씨와 B씨의 과실을 20%로 판단해 배상액을 책정하며 "망인들은 사고 당시 폭우의 심각성을 충분히 알고 있었고, 도로에 빗물이 가득 차 있었던 만큼 상태를 주의 깊게 확인하고 건넜어야 했다"고 밝혔다.
(사진=연합뉴스)